선교와 선교학(Missiology)-현대의 탈 식민지 세계

        6 .현대의 탈 식민지 세계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은 서구 열강을 위축시켰고, 경제적으로도 일대 타격을 가했으며, 국제무대에서도 유럽의 위력과 역할은 약화되었고, 국제연합의 창설과 민족자결주의의 고취는 약소국가들의 발언권과 위상을 높여 주었다. 세계정세의 변화와 세속권력의 상실은 복음과 유럽문화, 보편적 그리스도교와 유럽화된 그리스도교를 구분토록 하였고, 선교지의 문화와 사상에 대하여 개방되고 긍정적인 시각을 되찾게 하였다. 당시의 역사학, 종교학, 인류학 등의 발전은 비그리스도교 민족의 문화, 종교, 사상을 공평하게 이해하고 평가하려는 분위기였다.


교황 베네딕트 15세는 회칙 ‘가장 위대한 일’(Maxium illud, 1919)을 반포하여 선교와 식민정책을 구분하고, 선교지에서의 방인 사제양성과 교계제도의 토착화를 역설하였다. 또 선교사들의 적합한 양성과 영육간의 신자들의 협력을 당부하였다. 교황 비오 11세는 회칙 ‘교회의 일’(Rerum Ecclesiae, 1926)을 통하여 방인사제 양성과 교계제도의 토착화를 재 강조하면서 방인 수도회의 창설과 교리교사의 양성을 촉구하였으며, 신앙의 본질을 잃지 않는 범위 내에서 토착화를 강조하였다.1)


그러나 선교는 여전히 인적 물적 자원 및 그 방법에 있어서도 유럽에 의존하고 있었고, 개종자들은 시골의 하위계층의 사람들이었으며, 전례는 그 통일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라틴전례를 사용하고 있었고, 선교활동도 성직자들 중심으로 병원, 학교, 사회활동 등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새로운 분수령이 되었다. 이 전쟁은 지역적 경계에 변화를 주지는 않았으나, 군사적 사태나 정치적 투쟁을 훨씬 너머 사회적 얼개를 뒤집어 놓았고 정신적 얼개도 붕괴시킨 문화적 사태였다. 식민체제의 종언(인도, 파키스탄 1947-나이지리아, 콩고 1960)이란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실일 뿐, 평등과 자유가 인류공존의 새로운 지주가 되었다. 인제 교회는 새로운 사태에 직면하고 있었고 교회가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세상과 만나지 않는다면 현대세계에서 자신의 사명을 수행할 수 없음을 자각하기 시작하였다.


세상은 자율과 평등을 추구하고 있었으며, 많은 나라들이 비종교국가임을 선언하였고, 어떤 나라들은(회교, 불교) 국가종교를 선언하였다. 또 종교자유를 선언하고 유엔은 인권선언을 하였다. 세계는 산업화되고 도시화하였으며 인종과 역사, 문화와 종교적 단일성에 대한 자각과 함께 다양성을 요구하였다. 또 사람들의 참여의 요구는 점증하고 있었다.


교황 비오 12세의 회칙 ‘복음의 선포자들’(Evangelii praecones, 1951)은 선교지역에서 지역적인 배타주의를 배격하고 학교, 출판, 의료-사회 사업에서 평신도들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신앙의 선물’(Fidei donum, 1957)은 아프리카의 선교에 도움을 호소하면서 신비체로서의 친교의 표현으로서의 원조와 교구 사제들의 참여를 독려한다. 요한 23세의 회칙 ‘사목자들의 원리’(Princeps Pastorum, 1959)는 방인사제와 평신도들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전반적으로 금세기까지의 교회의 선교는 해외 선교지에로의 파견 선교로 이해했다. 선교지로 선교사가 파견되어 교회를 부식하고 교회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과정에서 유럽의 문화가 이식되고 식민지화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선교의 단계적 발전과정은 개별 신앙인의 성사생활(입문, 견진, 성체)과 교계제도의 설립(방인 주교나 사제)에 의해서 측정되거나 성숙과 완결의 단계가 구분되었다. 방인 주교가 선교 지역교회를 사목할 때 신생 지역교회의 선교종결을 위한 핵심 요소를 갖추었다고 생각했고, 이 신생 선교지 지역교회가 타 지역교회와 교류하고 나눔의 관계를 가질 때 선교가 완결된 것으로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유럽과 남북 아메리카는 선교가 완결된 지역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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