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선교 개념-교회 중심적 선교이론

 

5. 전통적 선교 개념


1. 교회 중심적 선교이론1)


그리스도 교회는 고금을 막론하고 소위 ‘절대성 요청’(絶對性 要請)-그리스도 신앙뿐만 아니라 교회가 인간의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는-을 표방함으로써, 교회의 필요성으로부터 복음선교의 의미와 필요성이 결과적으로 규정된다. 교회는 인간이 구원되려면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고 고백하고 가르치고 있다. 플로렌스 공의회(1439-1445)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는 정식을 대변하고 있다.


“우리 주이시며 구세주의 말씀으로 설립된 로마 성교회는 가톨릭 교회 밖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즉 이교인(異敎人)뿐 아니라 유대인도, 이단자도 열교자(裂敎者)들도, 만일 이들이 죽기 전에 교회에 들어오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수 없고 오히려 ‘악마와 그의 졸도들을 위해 마련되어 있는’(마태25,41) 영원한 불에 빠지게 되리라고 굳게 믿고 선포한다.”2)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교회의 구원 필요성의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


“공의회는 성경과 성전에 의거하여 나그네길에 있는 이 교회가 구원에 필요한 것이라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한 분만이 중재자시요 구원의 길이시며, 이 그리스도는 당신 몸인 교회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믿음과 세례의 필요성을 강조하시면서(마르16,16; 요한3,5), 동시에 교회의 필요성도 확인하신 것이니 문을 통해서 집에 들어오듯이 사람들이 세례를 통해서 교회에 들어오기 때문이다”(교회14).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 밖에서의 구원 가능성을 원칙적으로 인정하는 입장이다.


“사실, 자기의 탓 없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교회를 알지 못하지만, 성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으며 양심의 명령으로 알려진 하느님의 뜻을 은총의 힘으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교회16).


“본인의 탓 없이 복음을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비록 하느님은 당신만이 아시는 길로 신앙-이것 없이는 하느님께 의합할 수 없다(헤브11,6)-에로 이끄실 수 있으시긴 하지만 교회는 복음을 전파할 필요성과 성스러운 의무를 아울러 갖는 것이며(1고린9,16) 이로 인해 선교활동은 항상 변함 없이 오늘도 그 힘과 완전한 필요성을 갖고 있다(선교7).”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선교교령 6-7항을 채택함에 있어 맹렬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일부 신학자들은 교회 밖에서도 구원의 가능성이 있으므로 선교가 필요한 이유는 선교 없이는 인간이 구원될 수 없어서가 아니라, 하느님이 믿는 이들을 한 백성으로 하나의 그리스도의 신비체로, 성령의 한 성전(聖殿)으로 모시고자 하신 의도 때문에 필요하다고 하였고, 또 일부에서는 소위 ‘익명(匿名)의 그리스도인’이라는 개념으로 교회가 없어도 인간의 본성이 하느님께 향하게 되어 있으니 선교는 이 익명의 그리스도인을 실지로 그리스도인을 만드는데 유조(有助)할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공의회는 이런 주장들의 결론을 채택하지는 않았지만 그 주장에 포함된 일부 사실들을 인정하면서 주장 자체를 단죄하지 아니하고 신학자들의 더 깊은 연구에 맡겨 두었다.


선교교령(7)이 밝히는 선교의 필요성(동기)은 1)인간구원을 원하시는 하느님의 명령(마르16,16; 요한3,5; 교회14))이다. 자기 탓이 없이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도 하느님의 자비로 하느님만이 아시는 방법으로 신앙에 이를 수도 있겠지만, 이 길은 우리의 인식을 넘는 것이다. 구원을 위하여 신앙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히브11,6), 세례는 명령 때문에 필요하니 이런 구원의 소식을 선포하는 선교도 필요하다. 2)교회는 하나의 사상 체계가 아니라 살아 있는 신비체이므로 복음선포로서 성장하는 것은 권리요 의무일 뿐이니라 사랑의 발로다. 본질적으로 친교의 신비인 교회는 선교로써 자기를 타인에게 주지 않을 수 없다. 3)선교는 하느님의 창조목적의 달성에 필요하다. 하느님은 만물과 만민을 당신의 영광을 현양하기 위하여 창조하셨다. 그리스도의 구속이 결국 창조목적을 재건하는 것이었고, 선교로서 인간은 이 구속의 은총을 받고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게 되어 하느님의 영광을 현양하게 되므로 선교는 창조목적을 달성하는데 필요하다. 결국 선교의 필요성 문제는 교회의 필요성 문제와 직결된다.3)


여기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공식적으로 채택한 ‘교회의 부식'(扶植: plantatio Ecclesiae)이라는 원리가 나온다.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설교하고,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주고 기타 다른 성사를 베푸는 복음선교 활동은 세계 안에서의 교회의 현존을 전제로 한다. 이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가시적인 교회제도에 가입하여 신앙을 고백하고 성사생활을 영위하며 목자의 통치를 받게 될 때에, 선교활동은 성공한 것으로 나타난다.


“교회로부터 파견된 복음의 전파자들이 온 세계에 가서 복음전파의 임무와 아직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백성들과 집단에 교회를 부식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독특한 사업을 ‘선교’(宣敎: Missiones)라고 한다. 이것은 선교활동을 통하여 완수되며 보통으로는 성청으로부터 인정된 일정한 지역들에 있어서 실행되고 있다. 이런 선교활동의 본 목적은 아직 교회가 뿌리를 박지 못한 백성이나 집단에 있어서 복음을 선포하며 교회를 부식하는 일이다”(선교6).


교황 바오로 6세의 사도적 권고 「현대의 복음선교」(Evangelii Nuntiandi)에서도 같은 입장이 견지된다.


“복음선포는 복음의 메시지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를 그 땅에 심는데 의미가 있는 만큼, 성체성사에 정점을 둔 성사생활의 힘 없이는 교회건설도 이루어질 수 없다“(28).


공의회의 선교교령에서 선교 개념이 본질적으로 많은 부분들이 지리적-법률적 개념과 교회 부식의 이론이 남아 있더라도 전통적인 내용과 비교하여 더욱 풍요롭게 되었다. 교회는 ‘구원의 보편적 성사’(선교1; 교회48)로서 만백성에 파견되었으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적 본성을 지닌다. 이는 성부의 ‘원천적 사랑’에서 흘러나온 성자와 성령의 파견에서 교회의 기원을 갖기 때문이다(선교2). 공의회는 복음선교의 대상인 비그리스도인들과 그들의 세계관 내지 종교에 대해서 그전의 교회의 태도와는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하느님이 이교인에게도 충분한 구원 은혜를 부여하시고, 교회 밖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도 이 은혜가 전달된다고 이 공의회 이전에도 가르쳐 왔다.4) 또 공의회는 비그리스도교적 종교들 속에서 ‘옳고 성스러운 것’이 있음을 발견하고 있으며, 이들의 생활과 행동양식뿐 아니라 그들의 규율과 교리도 거짓 없는 존경으로 살펴본다고 말한다(비그리스도교 1-2). 그러나 선교활동의 본 목적이 특정한 가시적 교회의 세력 부식에 있다는 선교관은 지양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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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5. 전통적 선교 개념

    1. 교회 중심적 선교이론1)

    그리스도 교회는 고금을 막론하고 소위 ‘절대성 요청’(絶對性 要請)-그리스도 신앙뿐만 아니라 교회가 인간의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는-을 표방함으로써, 교회의 필요성으로부터 복음선교의 의미와 필요성이 결과적으로 규정된다. 교회는 인간이 구원되려면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고 고백하고 가르치고 있다. 플로렌스 공의회(1439-1445)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는 정식을 대변하고 있다.

    “우리 주이시며 구세주의 말씀으로 설립된 로마 성교회는 가톨릭 교회 밖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즉 이교인(異敎人)뿐 아니라 유대인도, 이단자도 열교자(裂敎者)들도, 만일 이들이 죽기 전에 교회에 들어오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수 없고 오히려 ‘악마와 그의 졸도들을 위해 마련되어 있는’(마태25,41) 영원한 불에 빠지게 되리라고 굳게 믿고 선포한다.”2)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교회의 구원 필요성의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

    “공의회는 성경과 성전에 의거하여 나그네길에 있는 이 교회가 구원에 필요한 것이라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한 분만이 중재자시요 구원의 길이시며, 이 그리스도는 당신 몸인 교회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믿음과 세례의 필요성을 강조하시면서(마르16,16; 요한3,5), 동시에 교회의 필요성도 확인하신 것이니 문을 통해서 집에 들어오듯이 사람들이 세례를 통해서 교회에 들어오기 때문이다”(교회14).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 밖에서의 구원 가능성을 원칙적으로 인정하는 입장이다.

    “사실, 자기의 탓 없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교회를 알지 못하지만, 성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으며 양심의 명령으로 알려진 하느님의 뜻을 은총의 힘으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교회16).

    “본인의 탓 없이 복음을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비록 하느님은 당신만이 아시는 길로 신앙-이것 없이는 하느님께 의합할 수 없다(헤브11,6)-에로 이끄실 수 있으시긴 하지만 교회는 복음을 전파할 필요성과 성스러운 의무를 아울러 갖는 것이며(1고린9,16) 이로 인해 선교활동은 항상 변함 없이 오늘도 그 힘과 완전한 필요성을 갖고 있다(선교7).”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선교교령 6-7항을 채택함에 있어 맹렬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일부 신학자들은 교회 밖에서도 구원의 가능성이 있으므로 선교가 필요한 이유는 선교 없이는 인간이 구원될 수 없어서가 아니라, 하느님이 믿는 이들을 한 백성으로 하나의 그리스도의 신비체로, 성령의 한 성전(聖殿)으로 모시고자 하신 의도 때문에 필요하다고 하였고, 또 일부에서는 소위 ‘익명(匿名)의 그리스도인’이라는 개념으로 교회가 없어도 인간의 본성이 하느님께 향하게 되어 있으니 선교는 이 익명의 그리스도인을 실지로 그리스도인을 만드는데 유조(有助)할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공의회는 이런 주장들의 결론을 채택하지는 않았지만 그 주장에 포함된 일부 사실들을 인정하면서 주장 자체를 단죄하지 아니하고 신학자들의 더 깊은 연구에 맡겨 두었다.

    선교교령(7)이 밝히는 선교의 필요성(동기)은 1)인간구원을 원하시는 하느님의 명령(마르16,16; 요한3,5; 교회14))이다. 자기 탓이 없이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도 하느님의 자비로 하느님만이 아시는 방법으로 신앙에 이를 수도 있겠지만, 이 길은 우리의 인식을 넘는 것이다. 구원을 위하여 신앙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히브11,6), 세례는 명령 때문에 필요하니 이런 구원의 소식을 선포하는 선교도 필요하다. 2)교회는 하나의 사상 체계가 아니라 살아 있는 신비체이므로 복음선포로서 성장하는 것은 권리요 의무일 뿐이니라 사랑의 발로다. 본질적으로 친교의 신비인 교회는 선교로써 자기를 타인에게 주지 않을 수 없다. 3)선교는 하느님의 창조목적의 달성에 필요하다. 하느님은 만물과 만민을 당신의 영광을 현양하기 위하여 창조하셨다. 그리스도의 구속이 결국 창조목적을 재건하는 것이었고, 선교로서 인간은 이 구속의 은총을 받고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게 되어 하느님의 영광을 현양하게 되므로 선교는 창조목적을 달성하는데 필요하다. 결국 선교의 필요성 문제는 교회의 필요성 문제와 직결된다.3)

    여기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공식적으로 채택한 ‘교회의 부식'(扶植: plantatio Ecclesiae)이라는 원리가 나온다.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설교하고,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주고 기타 다른 성사를 베푸는 복음선교 활동은 세계 안에서의 교회의 현존을 전제로 한다. 이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가시적인 교회제도에 가입하여 신앙을 고백하고 성사생활을 영위하며 목자의 통치를 받게 될 때에, 선교활동은 성공한 것으로 나타난다.

    “교회로부터 파견된 복음의 전파자들이 온 세계에 가서 복음전파의 임무와 아직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백성들과 집단에 교회를 부식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독특한 사업을 ‘선교’(宣敎: Missiones)라고 한다. 이것은 선교활동을 통하여 완수되며 보통으로는 성청으로부터 인정된 일정한 지역들에 있어서 실행되고 있다. 이런 선교활동의 본 목적은 아직 교회가 뿌리를 박지 못한 백성이나 집단에 있어서 복음을 선포하며 교회를 부식하는 일이다”(선교6).

    교황 바오로 6세의 사도적 권고 「현대의 복음선교」(Evangelii Nuntiandi)에서도 같은 입장이 견지된다.

    “복음선포는 복음의 메시지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를 그 땅에 심는데 의미가 있는 만큼, 성체성사에 정점을 둔 성사생활의 힘 없이는 교회건설도 이루어질 수 없다“(28).

    공의회의 선교교령에서 선교 개념이 본질적으로 많은 부분들이 지리적-법률적 개념과 교회 부식의 이론이 남아 있더라도 전통적인 내용과 비교하여 더욱 풍요롭게 되었다. 교회는 ‘구원의 보편적 성사’(선교1; 교회48)로서 만백성에 파견되었으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적 본성을 지닌다. 이는 성부의 ‘원천적 사랑’에서 흘러나온 성자와 성령의 파견에서 교회의 기원을 갖기 때문이다(선교2). 공의회는 복음선교의 대상인 비그리스도인들과 그들의 세계관 내지 종교에 대해서 그전의 교회의 태도와는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하느님이 이교인에게도 충분한 구원 은혜를 부여하시고, 교회 밖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도 이 은혜가 전달된다고 이 공의회 이전에도 가르쳐 왔다.4) 또 공의회는 비그리스도교적 종교들 속에서 ‘옳고 성스러운 것’이 있음을 발견하고 있으며, 이들의 생활과 행동양식뿐 아니라 그들의 규율과 교리도 거짓 없는 존경으로 살펴본다고 말한다(비그리스도교 1-2). 그러나 선교활동의 본 목적이 특정한 가시적 교회의 세력 부식에 있다는 선교관은 지양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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