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서에는 후대에 ‘성사’(sacramentum)라는 개념으로 포괄되는 표징행동들인 세례, 성찬례, 안수, 병자 도유들이 나타나지만, 이것들을 포괄하는 일반적 개념은 발견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쯔빙글리는 성사라는 말마디 자체가 비성서적이라고 단정하였다. 그러면 가톨릭 교회가 교회의 본질적인 요소로 규정하는 성사 실천을 과연 성서적으로 어떻게 밑받침할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하다면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 것일까? 지금까지 살펴본 바를 근거로 두 가지 방식으로 이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첫째, 성서가 전하는 구세사는 성사적 구조를 지녔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성사는 보이지 않는 은총을 전하는 보이는 표지라고 하였는데, 비가시적인 것이 가시적인 것들을 통해서 드러나는 구조는 신‧구약 성서에 증언된 구세사 전반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즉 구약성서는 비가시적인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과의 역사 안에서 가시적인 사건과 인물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신다는 것을 증언한다. 신약성서는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당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결정적이고 최종적으로 자신을 계시하셨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 안에서 교회에 현존하시고, 교회는 다양한 상징 행동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전한다. 이렇게 구세사 전체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보이게 드러내고, 이런 의미에서 성사적 구조를 지닌다고 하겠다. 바로 이런 구세사의 성사적 구조에 뿌리를 두고 교회의 7성사가 형성된 것이다.
둘째, 바오로와 고대 교부들의 용어 사용을 통해서 성사의 성서적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바오로가 즐겨 사용하던 신비(Mysterion)란 용어는 하느님의 숨겨진 구원경륜을 의미하는데, 이 신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계시되고 유일회적으로 성취되었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신비이다. 고대교회 교부들도 이런 용어 사용을 이어받았는데, 그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용어를 확대해서 사용하였다. 우선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이루는 역사적인 사건들(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십자가상 죽음, 부활) 그리고 이를 예시, 선취하는 구약의 여러 사건이나 제도들(할례, 제물, 빠스카 축제등)까지도 ‘신비’라고 일컬었다. 그리고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성취한 예수 그리스도(신비)가 현존하는 교회 공동체의 예식, 특히 세례와 성찬례도 ‘신비’라고 불렀다. 이 과정에서 떼루뚤리아노는 ‘신비’에 해당하는 희랍어 단어 ‘mysterion’을 라틴어 단어 ‘성사’(sacramentum)로 번역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비록 신약성서에 성사라는 단어가 나타나지는 않지만 ‘신비’라는 말마디를 중개로 내용적으로는 분명히 신약성서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좁은 의미의 성사 개념은 비로소 12세기 중반에야 형성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7성사가 12세기에 형성되었다고 오해되어서는 안된다. 7성사 예식은 다른 교회 예식들과 함께 이미 오래 전부터 실행되어 오다가, 12세기에 성사라고 지칭되는 기존의 수많은 교회 예식들 중에서 7가지만을 성사라고 규정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성사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림으로써 가능하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성사에 대한 정의에는 1) 외적인 표지, 2) 내적인 은총, 3) 그리스도에 의한 제정이라는 세가지 요소가 포함되었다.
트리엔트 공의회의 결정문에도 이것이 드러난다: “만일 누가 신약의 성사 모두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제정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 파문될지어다”(DS 1610). 성사는 “거룩한 것의 표징이며, 보이지 않는 은총의 보이는 형태”이다 (DS 1639). 트리엔트 공의회 직후 편찬된 로마 교리서(1566)에 따르면, “성사는 예수 친히 정하신 유형한 표지니, 그 표시하는 은총을 이루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성사론의 역사를 살펴볼 때 성사 집전자나 수취인의 신앙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고, 이런 측면에서 성사의 정의에 신앙의 중요성을 포함시킬 필요성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참작하면서 지금까지 성서적, 역사적 고찰을 통해서 살펴본 바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성사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성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시고 교회에 맡기신 은총의 표징으로서, 이 표징을 통해서 하느님의 은총이 틀림없이 전달되고, 합당한 마음가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은총의 결실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