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2,1-5 ;영원한 평화

 

영원한 평화

1. 말씀읽기: 이사야 2,1-5

1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환시로 받은 말씀.

영원한 평화

2 세월이 흐른 뒤에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리라.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지고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오르리라.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밀려들고 3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 오면서 말하리라.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이는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4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5 야곱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말씀연구

참된 평화란 어떤 것일까요? 또한 평화를 헤치는 것이 바로 전쟁인데, 전쟁을 포기하고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라는 말씀을 통해 참된 평화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평화를 내가 만들 수 있을까요? 참 된 평화는 오직 예수 그리스를 통해서만이 오고, 그 평화를 주신 교회를 통해서만이 오게 됩니다. 그 평화를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하셨고,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인사하시며, 당신이 마련하신 평화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평화를 교회에 주시며 평화를 전하라고 하셨고, 전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평화는 다시 제자들에게 돌아온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평화의 시대”에 살아가는 내가 향하는 곳은 어디이고, 내가 들고 있는 보습과 낫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깊이 묵상해 봅시다.



1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환시로 받은 말씀.

2 세월이 흐른 뒤에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리라.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지고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오르리라.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밀려들고

“주님의 집이 있는 산”은 바로 예루살렘입니다. 그리고 이 예루살렘은 하느님 백성이 모이는 곳을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유다인들이 축제를 거행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순례하는 것처럼, 모든 민족들이 하느님을 찬미하기 위해 모여든다는 것입니다.



“밀려들다”는 것은 선택에 대한 확신이 있고, 그것을 움켜잡기 위해 모여드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그곳에 있고, 내가 얻으려고 하는 것이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구원과 평화는 내가 반드시 얻어야 하는 것이고, 주님께로 나아올 때 확실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이기에 나는 확신을 가지고 내 형제자매들과 함께 주님께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사야 예언자의 예언이 나를 통해서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3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 오면서 말하리라.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이는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보면 산은 하느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모세도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을 만났고,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거룩한 모습을 산에서 보여주셨으며,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을 모이도록 하고, 마지막 사명을 부여하신 곳도 산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야 하는 이유는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이고1), 주님께만 참된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하느님”은 당신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이시고, 당신 계약을 기억하시는 하느님이시고, 당신 백성을 구원에로 이끄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리고 세상 모든 이들이 유일하게 찬미를 드려야 하는 분이 바로 “야곱의 하느님”이십니다. 야곱의 하느님이 바로 평화의 주님이시고, 야곱의 하느님이 바로 구원의 길을 걷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께로 나아가야만이 구원이 있음을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모여드는 이유는 하느님에게서 구원을 얻고, 하느님만이 참된 평화를 주시는 분이심을 알기 때문이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밀려드는 것”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민족들은 자기 손으로 만든 우상을 버리고, 참된 하느님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헛된 것들을 버리고, 주님께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 곳곳에 복음이 전해지면서, 주님께로 모여드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나 또한 주님께로 향하는 사람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내가 움켜쥐고 있는 것들 중에서 장애되는 모든 것들은 과감하게 버려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버리고 주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4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2)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야곱의 하느님께서는 평화의 하느님이십니다. 구원의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기에 전쟁이 종식되고, 평화가 오는 것입니다. 전쟁의 종식은 전쟁 무기를 파기하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 것으로 드러나고, 다른 민족에게 칼을 쳐들지 않는 것으로 드러나며, 전쟁을 배워 익히지 않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그런데 온 세상의 재판관이신 하느님께서는 세상 임금들이 하듯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심을 통해서 하십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들까지 내어 주셨고, 예수 그리스도께는 당신의 목숨까지도 내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얻는 것이 바로 평화입니다. 



5 야곱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그러므로 하느님의 자녀들은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며 하느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빛은 하느님의 구원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간다는 것은 주님의 구원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빛 속을 걸어가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① 하느님께서 참된 구원자이심을 굳게 믿고, 양다리를 걸치는 행위(우상숭배, 형식적인 경배)를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② 확신을 가진 믿음으로 하느님께서 참된 하느님이심을 내 삶으로 고백하여 내 옆에 있는 형제자매들도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도록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③ 폭력을 폭력으로 갚지 않고, 모욕을 모욕으로 돌려주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가슴에 품은 칼을 내려놓고 오히려 사랑으로 다가가는 사람입니다. ④ 형제자매를 거슬러 말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말로 형제자매를 분열시키거나 평화를 파괴하지 않고, 내 행동으로 분쟁을 일으키지 않는 사람입니다. ⑤ 주님의 길이 무엇인지를 배우려고 하며, 악한 자들과 함께 하며 악행을 배우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주님의 길을 걷는 사람이고, 이런 사람이 바로 구원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모습이 내 모습이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내가 주님 안에서 누리고 있는 평화는 무엇이고, 그 평화를 간직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② 주님의 빛 속을 걷고 있는 나의 기쁨은 무엇이고, 그 기쁨이 어떻게 표현되고 있습니까?



4.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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