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본당 [한] 金堤本堂

1920년에 수류(水流)본당 뤼카(L. Lucas, 柳嘉鴻) 신부가 사목 목표로 부인 전도회장의 필요를 느껴 정읍군 사외면 구장리 공소회장 김정엽(金正燁)의 부인인 김 아가다를 선임, 전교활동을 개시하여, 얼마 뒤 금산리(金山里) 공소를 신축하였다. 1930년에 와서 200여명의 예비자 영세를 계기로 본당 승격의 기틀이 마련됨에 따라 당시 수류 본당주임인 이상화(李尙華, 바르톨로메오) 신부가 주선하여 1931년 김제에다 성당을 세워 15년간의 공소시대를 청산하고,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를 주보로 하여 1935년 12월 8일 김제본당으로 승격 발족하여 오늘에는 요촌(堯村) 등 5개 구역을 관장하는 전주교구 관하의 유력한 본당으로 발전을 거듭하여 왔다.

대충 역대 주임신부별로 연혁을 살피자면, 1대(1935~1938년) 이상화 신부가 주춧돌을 놓은 뒤, 5대(1948~1950년) 조상익(趙相益, 베드로) 신부가 1948년 요촌리에 유치원을 설립하였고, 1951년 7대(1951~1955년) 허일록(許日錄, 다두) 신부가 대지 4,758평을 매입했는가 하면, 8대(1944~1958년) 김종택(金鍾澤, 요셉) 신부는 본당 124평, 사제관 2층의 신축과 더불어 용지, 백자동 공소를 설립하였다. 이어 9대(1958~1960년) 김재덕(金在德, 아우구스티노) 신부 때부터 19대(1980~현재) 오현택(吳賢澤, 가시미로) 신부 때까지 계속 공소 설립사업을 추진하여 소속 공소수는 8개소로 되었다. 또한 1983년에는 이미 매입한 김제읍 신풍리 163의 1 소재 대지 833평 위에다 건평 210평 규모의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성당 건립을 착공한 바도 있다.

예로부터 이 지대야말로 우리나라 곡창(穀倉)으로 불리는 만경(萬頃)들에 위치하여, 고찰 금산사(金山寺) 주위에는 불교와 유사불교가 뿌리를 박고는 있지만, 김제본당의 전교활동 상황은 매우 전망이 밝다. 김제읍 요촌리 172번지 소재 대지 4,758평 위에 자리 잡고 있는 김제본당은 주보로 ‘성모성심’을 모시고, 1984년 현재 신자수 3,088명에 8개 공소를 관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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