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전쟁 [한] 農民戰爭 [독] Bauernkrieg

봉건사회의 해체가 진행되던 시기에 봉건제의 억압과 수탈에 반대하여 봉기한 농민과 이를 탄압하려는 봉건영주계급 간에 일어난 전쟁. 서유럽에서 농민전쟁은 14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빈번하게 일어났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것은 1524~1525년에 일어난 독일 서남부의 농민전쟁이다. 이 전쟁은 루펜(Luffen) 백작 영지(領地)의 슈튈링겐(Stuhlingen) 농민에게서 점화되어 시바벤, 알사스, 프랑켄, 튀링겐, 티롤, 케른텐 등 서남부 독일지방으로 확산 비화되었고, 마침내 전 독일을 휩쓸게 되었다. 그들은 ‘농민 12개조’를 발표, 농민의 고혈을 짜는 10분의 1세, 농노제, 소작상속세 등의 철폐와 소작료 및 부역의 감면, 수렵과 어로의 자유, 본당 주임사제의 선거 등을 내걸고 봉건압제에 항거하여 궐기하였다. 이들 농민층은 뮌처(Thomas Munzer), 파이퍼의 이념과 지도하에 더욱 과격해졌다. 즉 현존하는 사회질서는 신의 뜻에서 이탈한 부정한 사회이기 때문에 이것을 타도하고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한다고 표방하였다. 모든 것을 공유하는 원시공산제를 주장한 이들의 대부분은 봉건압제에 시달리던 농민, 광부, 하층시민들이었다. 루터는 처음에 농민전쟁에 호의적이었으나 농민전쟁이 과격해지고, 사회변혁의 내용이 명확해지기 시작하자 입장을 돌변하여 봉건지배계급을 옹호하고 나섰다. 그는 영주의 군대에 의한 반란 농민의 처벌을 주장하였다. 농민전쟁은 봉건지배계급의 무자비한 탄압과 학살, 농민층의 지도력 부족으로 농민의 패배로 끝이 났다. 이로써 하층의 민중운동으로서의 종교개혁은 억압되고 루터의 종교 개혁도 대중을 잃고 상층계급화 되어 갔다. 그러나 농민전쟁은 봉건사회의 해체에 박차를 가해 근대 자본주의 형성에 하나의 원인이 되기도 한 것이다.

[참고문헌] A. Franzen, Kleine Kirchengeschichte, 1965(최석우 역, 교회사, 1982) / G. Franz, Der deutsche Bauernkrieg, 1933.

이 글은 카테고리: 신학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