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골

순교자 묘소 소재지. 최양업 신부 출생지. 충남 청양군 화성면 농암리의 다락골은 충남 서해안에서 가장 높은 오소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생긴 모양이 다락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 다래가 많이 난다고 하여 다랫골이라고도 불렸다. 다락골에 복음의 씨가 뿌려진 시기는 신해박해(1791년) 때라고 추정된다. <최바실리노 이력서>를 보면 신해박해 때 최양업 신부의 할아버지인 최인주(崔仁柱)가 그의 어머니를 모시고 박해를 피해 온 곳이 홍주(현 홍성) 땅 다락골이라고 되어 있다. 그 후 4~5년이 지나 최인주는 다락골에서 700여 미터 떨어진 새터[新垈]에 땅을 일궈 농사를 시작하였고, 여기서 최경환(崔京煥)과 최양업 신부가 태어났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고, 박해의 손길이 충청도 땅에도 거세게 몰아쳐와 많은 순교자들이 나왔다. 이 때 순교한 치명자의 묘소로 추정되는 30여기의 묘가 이 곳 다락골에 줄무덤을 이루고 있다. 이 묘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정확하지 한다. 홍주와 공주에서 순교한 교우들이라는 설과 해미나 갈매못에서 순교한 교우들이라는 2개의 설이 있다. 다만 최양업 신부의 집안에서 이들의 유해를 순교지로부터 옮겨가 이곳에 매장하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최신부의 집안사람들은 박해가 닥칠까봐 이 무덤이 신자들의 것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었으나 몇 년 뒤 이 사실을 안 조정에서 이 마을을 불살랐고, 교우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최신부의 아버지였던 최경환도 이 때 수리산으로 이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잊혀진 줄무덤은 발견되었고, 이 가운데 14기는 순교자의 묘소임이 확인되었고, 봉분이 뚜렷하지 않은 20여기의 묘소가 아직 확인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1982년 대전교구에서는 이들 무명 순교자를 위한 묘비를 세워 기념하고 있으며, 계속 발굴 작업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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