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탄시오 [라] Lactantius, Caecilius Firmianus

Lactantius, Caecilius Firmianus(240?~320?). 그리스도교 호교가. 라틴교부. 북아프리카 이교도 집 안에서 출생하여 아르노비오(Arnobius)의 제자가 되었고, 디오클레티아누스의 통치기간 동안 니코메디아에서 수사학 교사로서 활약하였다. 그의 개종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303년 박해 때 공직을 잃고 2년 후 서방으로 가서 갈리아에서 살다가 동방으로 돌아온 것 같다(311~313년). 노년에는(317년경)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아들인 크리스푸스(Crispus)의 가정교사로 지냈다.

현존하는 그의 저서는 그리스도교와 관련 있는 것들뿐이다. ≪하느님의 업적에 관하여≫(De Opificio Dei, 303~304)는 인체(人體)의 해부학적 경이로움을 통하여 하느님의 섭리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하느님의 가르침≫(Divinae institutiones, 313) 전 7권은 그리스도교를 공격하는 외교인들의 주장을 논박할 목적으로 씌어졌다. 이 저술에서 이교도들의 신앙과 철학을 공격하면서 그리스도교, 정의, 진리, 경신(敬神), 진정한 종교, 종말론 등을 다루는 락탄시오는 그 논거를 성서에서보다는 ‘시빌의 신탁’(Sibylline oracles) 등 이교도의 예언서에서 찾아내고 있다. 이 밖에 ≪하느님의 분노에 관하여≫(De ira Dei, 314경)에서 하느님의 인간에게 무관심하지 않으심을 밝히고 ≪박해자들의 죽음≫(De mortibus persecutorum, 318경)에서 박해자들의 비운을 그렸다. 후자는 역사서로서 가치 있는 문헌이다. 락탄시오는 당시 교양 있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교로 안내하기 위하여 형식의 미(美)를 존중할 필요에서 라틴어로 저술하였다. 그는 문체에 있어서 초기 그리스도교의 라틴어 저술가 가운데 고전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락탄시오의 저술을 가리켜 “마치 치체로의 웅변이 흐르는 것 같다”고 예로니모는 극찬한다. 문예부흥기 때 ‘그리스도 교인 치체로’라고 불린 락탄시오는 그리스도 교리에 관하여 깊이 다루지는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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