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isy, Alfred Firmin(1857-1940). 프랑스 근대주의자, 성서학자. 파리에서 공부하고, 파리의 가톨릭학원(Institut Catholique)의 히브리어 및 구약학 교수가 되었다(1881년). 후에 르낭(J.E. Renan)의 강의를 듣고 범신론자로 기울었다. 그로 인해 전통적인 가톨릭의 신앙은 흔들렸으나, 가톨릭교회에 머무르면서 교리의 근대화에 힘썼다. 비판적 견해로 인해 성서학교수 직위에서 물러나고(1892년), 앗시리아어 · 히브리어 이외의 강의를 금지당하였으며 ≪성서 교설≫(L’Enseignement biblique, 1892-1893) 출판 후에는 대학에서 아주 쫓겨났다. 하르나크(Adolf von Harnack)의 ≪그리스도교의 본질≫에 답해서 ≪복음과 교회≫(L’Evangile et l’Eglise, 1902)를 출판, 하르나크가 그리스도교를 역사적 예수의 가르침 위에 세워진 것이라 주장한데 대해, 그리스도교의 본질은 발전해 나아가는 교회의 신앙 속에서 구해져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제4 복음서≫(Le Quatrieme vangile, 1893) 등을 저술하였으나 모두 비난받고 금서(禁書)가 되었다. 후에 시골로 물러가(1904년), 대작 ≪공관복음서≫(Les Evangiles synoptiques, 1908)를 저술하여 교회의 전통에 공공연히 반대되는 견해를 내놓고 파문을 당하였다. 콜레즈 드 프랑스에서 종교사 교수로 근무(1909-1930), ≪종교≫(Les Religions, 1917) 등을 저술하여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교(異敎) 신비주의의 강한 영향을 역설, 또한 ≪신약제서≫(新約諸書, Les Livres du Nouveau Testament, 1922)에서 이 사고방식을 발전시켜 양식사적 연구법의 영향에 반영시키고 있다. 그의 신약에 관한 최종적 견해는 ≪그리스도교의 탄생≫(Naissance du Christianisme, 1923) 속에 요약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복음서를 역사적 문서로 다루지 않고, 교리문답적 문학의 일종이면서도 역사적 근거가 희박한 것이라 주장하였다. 그는 독일의 성서비평학에 관해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거기에 그 자신의 직관을 섞어서 독특한 성서학을 형성하였다. 프랑스의 근대주의 창설자로 널리 인정받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