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서부의 공화국. 폴란드에 인접해 있다. 정식 명칭은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Litovskaya Sovietskaya Costialisticheskaya). 1918년 독립을 선언, 1940년 소연방에 가입하였다. 면적은 65,200㎢, 인구는 320만 3,000명(1982년 추계), 세례 교우수는 256만 2,000명(1982년 현재), 교구수는 7개, 본당 및 준본당수는 630개. 1240년경 민도베(Mindowe) 대공이 리투아니아 여러 분국(分國)을 통일하고, 독일 기사수도회 및 검우(劍友) 기사수도회와 1250-1251년 격렬히 투쟁한 끝에 그리스도교를 채용하면서 리투아니아는 비로소 역사의 각광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게디민(Gedimin) 대공(재위 : 1314-1342) 치하에야 비로소 가톨릭 교회 및 러시아 정교(正敎)가 자유로운 발전을 할 수 있었다. 대공 야겔로(Jagello, 1377-1434)는 폴란드 왕위를 계승할 여왕 헤드비히(Hedwig)와 결혼함으로써 폴란드의 왕위에 오르기 위해 1386년 크라카우에서 영세(領洗)하고, 1388년 주교구 비르나를 설치, 1392년 리투아니아 대공국을 봉토(封土)로 준종형제 비토프트(Witowt)와 결탁해서 독일 기사수도회를 탄네베르크에서 격파, 1413년 호로들로(Horodlo) 조약으로 폴란드와의 긴밀한 결합이, 1569년 루블린 국회에서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완전한 연합이 성립되었다. 1795년 폴란드의 제3차 분할로 인해 리투아니아의 대부분은 러시아령이 되었으나 소부분은 프로이센령이 되고, 1807년 대공령 바르샤바와 합병, 1814년 러시아령이 되었다. 19세기, 특히 1863년의 반란 후 리투아니아 국민은 각성하기 시작, 1차 세계대전에 독일은 1915년 9월 리투아니아를 점령, 1918년 철수, 1920년 봄에 리투아니아는 밀려온 러시아의 볼세비스트를 물리쳤다.
1940년 현재 가톨릭 교세는 본당수 550, 준(準)본당수 712, 교구사제 1,646, 수도자 1,586(남자는 도미니코회 회원, 카프친회 회원, 프란치스코회 회원, 마리아회 회원, 예수회 회원, 여자수도회 회원)을 헤아리고 있었다. 코브노 대학에는 신학과가 있었고, 신학교 4개에 신학생 470명, 가톨릭교도 약 210만 명, 가톨릭 기관지 52개가 있었다. 1939년 8월의 나치스 · 소련간의 협정으로 대부분의 독일인은 송환되고(그 중 태반이 점령하의 폴란드로 이주), 1940년 리투아니아는 강제적으로 소연방에 가맹(加盟), 1941-1944년의 독일군 점령에 이어, 소연방의 새로운 공화국이 되었다. 이때부터 국민으로서의 리투아니아인(人)을 말살하려는 민족적 종교적 박해가 시작되어, 1950년에는 발틱해 연안 3국에서 100만 명 이상이 강제노동 수용소로 보내져 왔으며, 리투아니아에서 해마다 3만 여명이 국외로 추방되었다. 1951년 현재 리투아니아에는 사제 200명만 남기고 모조리 살해, 투옥, 유형, 국외 망명하였고 수도자, 신학생은 한 사람도 없으며, 가톨릭의 모든 신문은 발행 금지되었다. 전체 6개 주교구에는 교구장이 없었고 주교 2명은 투옥, 2명은 유형, 1명은 행방불명, 보좌주교 1명은 국외 망명하였다. 교회활동은 거의 불가능하고, 60개의 모든 성당은 압수되고, 예배 및 성사수여는 과세(課稅)를 당하게 되었다. 로마에서 임명된 주교 2명이 1955년 가을에 서계(-階)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