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인 마니(Mani, 216-276)가 3세기에 창시한 이원론적(二元論的) 종교 이단. 마니교는 한때 인도, 중국, 지중해 연안 일대에 퍼져나갔으며 거의 세계적인 종교라고 할 만큼 널리 보급된 적도 있었다. 3세기초의 서부 페르시아는 풍성하고도 다양한 토착 외래종교와 신앙의 집합장소였다. 토속적인 고대신앙과 조로아스터교(拜火敎), 그리고 유태교가 그 중에 들어 있었다. 그리스도교는 시리아 교회에 소속된 아랍인들을 통해서 페르시아에 소개되었으며, 심지어 힌두교의 바라문(Brahmana)과 불교 승려들에게도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풍토에서 귀족가문 출신의 창시자 마니는 240년 무렵, 사산조(朝) 시대에 조로아스터와 그 밖의 예언자(모세, 예수)의 사명을 개선할 뿐 아니라, 그것을 완성하고 그들을 대신하여 신의 계시를 전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고 주장하였다.
마니는 인간이 어디서 왔으며, 왜 타락했는가, 또 인간이란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웅장한 우주론적 신화를 구상하였다. 태초에 두 가지 적대적 본질이 존재했는데, 선과 악, 빛과 어둠, 하느님과 물질이 그것이라고 하였다. 눈에 보이는 세계는 하느님의 일련의 복잡한 과정을 통해서 꾸며낸 것이고, 그 모두가 원상(原狀)을 회복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반작용을 하는 것이 물질이며, 여기서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 한 쌍이 창조된다. 그리고 아담의 눈을 열어주는 이름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찬란한 예수라는 이름은 그의 영혼의 신적 기원(紀元)을 알려준다. 그러나 아담의 자손은 물체의 설계에 따라 생식을 계속하며, 이것이 바로 현재 인류가 존재하는 상태라고 주장하였다. 마니교는 또 불교적인 윤회설(輪回說)의 색채도 짙다. 그 사상체계에서는 다른 종교와의 유사성이 많은 점을 쉽게 엿볼 수 있다.
마니교에 의하면, 신은 모든 선의 창조자이고, 악마는 모든 악의 창조자이다. 선의 세력과 악의 세력간에는 끊임없이 투쟁이 전개되고, 신은 영(靈)이 신체보다 우위에 섰을 때만 승리를 거둔다. 사람이 행하는 악은 악마가 지배하는 힘에서 비롯된다고 마니교는 전제한다. 그러므로 악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부정하는 종교이다. 마니는 인도에 가서 종교 단체를 만들고 페르시아에 돌아와 설교를 계속하였다. 왕실(王室)은 처음에 그를 환영하였으나 다음에는 배척한 후, 걸형(桀刑)에 처하였다.
마니교는 죄와 참회문제에서 그리스도교와 가장 심각하게 대립된다. 즉 세계는 선인 빛의 세계와 악인 어둠의 세계라는 두 근원적이고 적대적인 부분으로 구분되고, 어둠의 세계 각 부분(지구, 인간)의 발생과정에서 선 · 악 두 세계의 요소들이 뒤섞여 생겨났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마니교는 12세기에 가까운 동안 북아프리카로부터 중국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서 갖가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8세기와 9세기에 걸쳐 외몽고의 오르콘 강변에 세워진 위구르국에서는 국교로도 인정되었고, 심한 박해를 받으면서 중국 서남부인 복건성(福建省)까지 들어갔다. 그러나 296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반마니교 칙령이래, 동 · 서 로마의 그리스도교 황제들과 발상지인 페르시아 군주들의 금교(禁敎) 정책으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리고 아우구스티노와 같은 교회 저술가들로부터 이단이요, 그리스도교의 큰 적으로 신랄한 공격을 받아왔다. 마니교는 그리스도교에서 이단설을 주장한 바울리치아노파(派),
보고밀파(Bogomiles), 카다리파(Cathari) 등 중세 종파들과의 관계에서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수많은 수수께끼를 남겨놓고 있다.
[참고문헌] O.G.V. Wesendonk, Die Lehre des Mani, 1922 / F.C. Burkitt, The Religion of the Manichees, London 1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