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rris, John Edward(1889~1987). 메리놀 외방전교회 선교사. 제2대 평양교구장. 초대 교구장 번(Patrick Byrne, 方) 신부가 1929년 8월에 메리놀(Maryknoll)회의 부총장으로 전출되어 귀국하자, 로마 교황청은 1930년 4월 평양교구 제2대 지목(知牧)으로 모리스 신부를 임명하였다. 모리스 신부는 평안도의 전교사업을 맡게 된 미국 메리놀 외방전교회의 한국진출을 위한 선발대로 1923년 11월 24일 내한하여 1924년 8월부터 영유(永柔) 본당 주임신부로 재직하면서 성당과 수녀원을 신축하는 등 전교사업에 힘쓰는 한편 교육사업과 사회사업도 활발히 전개하여 그의 높은 덕망과 뛰어난 능력은 일찍부터 널리 알려졌다. 그는 평양교구의 사목책임을 맡자 우선 전교활동을 적극적으로 펴기 위해 각지에 본당을 신설하는 등 사목조직 확충에 진력하였다. 또한 방인 성직자 양성에 주력하여, 양기섭(梁基涉, 베드로), 강영걸(康永杰, 바오로), 홍용호(洪龍浩, 프란치스코) 등 세 사람의 부제에게 사제품을 받게 하고, 김필현(金泌現, 루도비코)과 박용옥(朴瓏玉, 디모테오), 강현옥(康賢玉, 요한)을 외국으로 유학 보내 장차 방인 교구로서의 자립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였다.
한편 평신도 지도자 양성의 필요성을 절감한 모리스 교구장은 1933년 9월 28일 제1회 평양 교구 전교회장 강습회를 개최하였고, 여기서 이루어진 교리강좌 내용을 인쇄하여 간행하나 이것이 1934년 1월에 창간을 보게 된 <가톨릭 연구>이다. 1933년 3월 조선 가톨릭 운동의 위원장이 된 모리스 교구장은 1934년 8월 15일부터 4일 동안 평양교구 평신자대회를 열어 ‘평양교구 가톨릭운동연맹’을 조직하여 교세 확장에 큰 성과를 거두었다. 1935년 천주교 조선전래 150주년을 맞아 10월 2일부터 3일 동안 다채롭고 성대한 경축행사를 열어 모진 박해를 거쳐서 얻어진 한국 가톨릭 교회의 빛나는 영광을 만방에 과시하였다. 그는 방인 수녀 양성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영유에 있던 메리놀회 수녀들에게 수녀원 창립사업을 위촉함으로써 1932년 6월 27일 우리나라 최초의 방인 수녀회인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가 탄생케 되었다.
그의 다방면에 걸친 이 같은 노력으로 부임 초에 9개 본당과 65개 공소에 총신자수 7천여명에 불과했던 것이, 1936년 9월 7일 몸이 쇠약해져 한국을 떠날 때까지 재임 불과 6년만에, 19개 본당과 134개 공소에 신자총수 1만 7,738명이라는 놀라운 발전을 이룩하였다. 그는 미국에 귀국하여 건강이 회복되자 메리놀회 전교전담지역인 일본 교토(京都) 지역으로 부임하여 그 한국인 교포신자들을 돌보았고, 1970년 2월 모든 공직에서 은퇴한 후, 현재 메리놀회 본부에 있는 ‘성녀 데레사의 집’에서 휴양중이다.
[참고 : 존 에드워드 모리스 몬시뇰은 1987년 7월 10일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