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2억 3,206만여명, 영토면적 936만 3,123㎢(1982년 추계)의 미국은 세계 최강의 자본주의국가로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반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가이다. 미국에는 식민지 시대에 이주해 온 이민들이 제각기 본국에서 신봉하던 교파와 분파가 뒤섞여 미국의 종교는 그야말로 세계 그리스도교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들 가운데 감리교, 침례교, 루터파 교회, 장로교, 성공회, 회중파 등이 주류를 이루는 프로테스탄트가 전체 인구의 35%를 차지하며, 가톨릭 교회의 신자는 약 19.5%를 차지한다. 이외 유태인 교회가 3%, 동방교회는 1%를 차지한다.
가톨릭 교회가 미국에 진출한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1528년 미국 교회의 개척자라 불리는 스페인의 프란치스코회 세라(Juan Juares Serra) 신부가 플로리다주 포교지 주교로 파견된 점에 비춰보아 그 이전임을 알 수 있다. 초기 미국의 선교는 프란치스코회, 예수회, 도미니크회 수도사들이 미국의 남동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가운데 이뤄졌다. 그러나 이 시대의 가톨릭 신자들은 정교도들로부터 심한 박해를 받았고, 1776년 독립선언과 함께 종교의 자유를 얻긴 하였지만 그 후에도 상당히 오랫동안 프로테스탄트들로부터 탄압을 받았다. 1850년대 Native American Party에 의한 교회나 수도원 파괴와 약탈 및 성직자와 평신도들에 대한 학살, 19세기말 American Protective Association의 가톨릭 신자에 대한 관직 박탈운동, Ku Klax Klan의 탄압 등은 그 대표적인 예에 속한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성장을 계속해 온 가톨릭 교회는 1982년 현재 교구수 179개, 본당수 2만 18개, 총교우수 5,145만여명으로 신장하였다.
미국 교회와 한국 교회는 1923년 처음으로 관계를 맺기 시작하였다. 당시 미국 메리놀 외방전교회가 한국에 진출하여 교구설정준비로 분주한 평양지방의 사목을 담당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뒤를 이어 1924년에는 메리놀 수녀회가 진출하여 메리놀 외방전교회 신부들의 활동을 도왔다. 한편 1927년 평양교구가 설정되면서 메리놀 외방전교회가 이 지방의 사목을 정식으로 담당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1941년 일본의 진주만 습격으로 미국과 일본이 전쟁상태로 돌입하면서 일본의 간섭으로 미국인 선교사들은 본국으로 추방당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추방되었던 미국인 선교사들이 다시 진출하면서 미국교회와 한국교회의 관계는 재개되었고, 6.25동란을 기점으로 하여 미국교회는 한국교회의 성장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특히 미국 가톨릭복지협회(N.C.W.C.)의 활약은 눈부신 바 있다. (⇒) 메리놀외방전교회, 미국가톨릭복지협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