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는 혈연, 문화, 전통, 언어를 같이하는 민족공동체가 민족의 통일, 독립 및 발전을 지향하여 추진하는 사상 또는 운동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민족주의는 중세 봉건사회가 붕괴하고 근대국가가 형성되면서 싹트기 시작하였다. 중세는 서로 다른 민족들이 그리스도교를 중심으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고 한 민족으로서의 통일보다 봉건영주가 중심이 된 계급사회가 인간공동체의 핵심이었다. 그 뒤 십자군으로 중세 영주의 권력이 약화되기 시작하고 문예부흥으로 민족의식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민족주의는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의 침략 이후 타국의 지배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성격을 띠게 되었다. 외국의 침략이나 지배로부터 독립과 해방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민족적 지도자가 필요하였다. 이것이 절대군주를 등장시키는 역사적 배경이 되었고 여기에서 민족주의와 군주정치는 밀착하기 시작하였다. 서구를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와는 달리 후진국 또는 식민지에 있어서의 민족주의는 자유주의 운동과 결합하였다. 강대국에 의하여 지배되었던 많은 식민지들은 민족적 독립과 함께 인민의 자유와 입헌정치(立憲政治)를 요구하면서 투쟁하였다.
민족주의 운동의 주체는 역시 신흥 시민계급이었다. 이들은 민족적 감정, 애국심을 고취하면서 자국의 독립과 발전을 위하여 타국을 배격하거나 억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많은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식민지를 획득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여기에 민족주의와 제국주의, 민족주의와 식민주의와의 상관성이 생긴다. 이렇게 민족주의는 역사적 발전과정에서 한쪽으로는 자유와 독립, 다른 한편으로는 억압과 침략의 뜻을 가지게 되었다. 여기에 교회적 입장에서 민족주의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하느님은 모든 인간을 다양하게 창조하였을 뿐만 아니라 인종, 언어, 습관, 전통도 다양하게 발전하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하느님은 다양한 민족이 서로 다른 은총 속에서 인류 공동체로서 결합하고.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보다 발전하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을 배격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느님의 계획은 민족상호간의 대립이나 투쟁을 원하지 않으며 모든 인류가 하나의 백성으로서 형제애를 드러내기를 바라고 있다. 즉 사랑과 일치를 위하여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지, 다양성 때문에 분열과 시기와 투쟁이 합리화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의 입장에서 민족주의에 대해서 가장 크게 문제되는 것은 강대 민족에 의한 소수 민족의 억압, 식민주의 문제 및 민족간의 상호협조다. 오늘날 인간 사회를 보다 공평하게 하고 인류의 상호유대를 보다 완전하고 튼튼하게 하려는 데에 몇 가지 장애가 있다. 보수적 민족주의와 인종차별주의가 그것이다. 최근에 정치적으로 독립한 민족들이 자주성을 보호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 것, 민족들이 조상들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을 자랑하는 것도 극히 자연스럽기는 하나, 이러한 감정도 전 인류를 감싸주는 보편적 사랑으로 더욱 완전해져야 할 것이다. 과격한 민족주의는 민족들을 고립시키므로 민족의 참된 이익을 잃게 한다. 특히 발전 계획을 실천하려거나 상업적 문화적 교류를 증진하고 강화하려면 모든 민족들의 노력과 지식과 자금을 집결시켜야 할 것이다. 또한 인종차별주의는 강대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새로 독립한 국가에 있어서 부족이나 정당의 대립 속에 숨어 있는 인종차별주의는 정의를 크게 해칠 뿐 아니라 시민의 안녕과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식민지 시대에는 인종차별주의가 식민자들과 원주민 사이에 불화를 일으키고 건설적인 상호이해를 방해하였으며, 실제로 약소민족은 강대국의 억압에 대해서 심한 원한을 품었다. 인종차별주의는 또한 후진국들 사이의 상호협력을 방해하고 국내에 있어서도 개인이나 가족이 인종이나 피부색 때문에 억울하게도 다른 시민들로부터 소외되고 인권마저 무시당하여 불화와 미움의 씨가 되었다.
불의(不義)한 환경 때문에 차별당하는 사람들 중에는 종족, 국적, 피부색, 문화, 성별 등 때문에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차별 대우를 받고 있는 모든 사람도 포함한다. 특히 개탄해야 할 일은 무수한 피난민들과 그리고 인종, 민족, 종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조직화된 박해를 받고 있는 집단이나 백성의 처참한 생활조건이다. 이런 인종차별과 박해는 가끔 대량학살의 형태로 나타난다.
최근에는 새로운 형태의 신식민주의(新植民主義)가 출현하고 있다. 그것은 아무리 감쪽같이 가면을 쓴 것일지라도 과거에 많은 민족들이 당한 식민주의보다 절대로 나을 것이 없다. 그리고 그 결과는 국제 관계의 불안과 세계평화에 위험을 가져왔다. 국제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하여 인권선언과 그 실현을 위한 국제조약이 많이 체결되었다. 그래도 민족적 문화적 종교적 정치적인 차별대우는 아직 계속되고 있다. 사실 인권은 비록 무시당하지는 않는다 해도 너무나 자주 충분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즉 현실적 상황에 비해서 입법조치가 너무 불완전하다. 입법조치도 필요하지만 그것으로 정의와 평등의 인간관계를 수립하기는 극히 불충분하다. 복음은 이들을 특별히 존중하라고 하였고 가난한 이들은 사회 안에서 특별히 보호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오늘의 인류는 국제 분야에 있어서 보다 광범한 국제협력의 확립을 요구한다. 거의 모든 민족이 독립은 하였다 하지만 과도한 불평등과 온갖 형태의 종속상태에서 해방되었다고 하기에는 아직 요원하다.
선진민족과 후진민족 사이의 대립은 날로 더욱 커지고 있으며 그것은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인류는 스스로의 장래운명과 현재 진행되는 각종 변화의 과정과 그 뜻에 대하여 자문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민족들 사이에서 경제, 문화, 정치발전의 명백한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민족은 최고도로 기계화된 반면에, 다른 민족은 아직도 후진된 경제 속에 살고 있다. 어떤 민족은 재화의 풍요함을 마음껏 누리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굶주림에 신음하고 있다. 어떤 민족은 고도의 문화를 누리고 있는데, 다른 민족은 이제야 겨우 근대화를 착수했을 뿐이다.
현대인은 보다 나은 정의를 희구하고 있으며, 인간과 인간, 민족과 민족 사이의 상호존경에 바탕을 둔 보다 튼튼한 평화를 갈망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민족들이 기아와 빈곤과 질병에 허덕이고 있으며 한편에서는 치열한 군비 경쟁이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에 먹을 양식조차 떨어졌다고 합시다. 그럴 경우 여러분 중 어떤 사람이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아무 것도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녹이고 배부르게 먹으라고 말만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야고 2:15-16). 오늘날 여러 민족에서 무수한 남녀가 굶주리고 무수한 소년 소녀들이 영양실조에 걸려 숨져가고 있다. 기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육체성장과 정신계발이 늦어지고 있으며, 따라서 이런 지역의 주민들은 희망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다. 비록 고도의 경제발전이 이룩되었다 하더라도 당면한 경제적 곤궁을 해결하기에 절대로 충분하지 못하다.
오늘날 부강한 민족이 급속도의 경제 성장을 하는 반면에 가난한 민족들은 아주 느린 발전밖에 기대할 수 없다. 이런 민족간의 불균형은 날로 더욱 심해진다, 어떤 민족에게서는 인구에 비해 남아돌아가도록 식량을 풍부히 생산하는가 하면, 다른 민족에서는 결핍을 느끼고 있다. 특히 경제적 선진민족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가치의 순위에 대한 의식이 약화되고 사멸되고 혼돈되고 있다. 그들은 영적 가치를 무시하고 망각하고 부정하면서 기술과학의 진보, 경제적 발전. 물질적 안일을 생의 목적의 유일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경제적 선진민족이 후진민족에게 줄 수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한 독소의 하나이다. 후진민족들은 기나긴 전통으로 말미암아 가장 중요한 인간가치의 일부를 아직도 생명있게 인식하고 보존하고 있다.
도덕적 원칙에 입각한 새로운 질서는 다른 민족들의 자유, 안전, 영토보존을 해치는 것은 절대로 금지한다. 따라서 강대한 민족들이 다른 약소 민족들과 경제적인 관계를 수립하는 경우에 그들간에 몇 가지 규준들을 제정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이런 경우에 약소 민족들에게 다른 민족들과 다름없이 정치적 독립을 수호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치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자연적인 민족들의 권리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들 약소 민족들에게도 경제발전을 할 권리가 있다. 이러한 권리들이 완전하게 보호되어야만 약소 민족들도 물질적 생산에 있어서나 혹은 문화발전에 관한 문제들에 있어서 자기 시민들의 공동선과 번영을 적절하게 달성할 수 있다. 그러므로 경제적으로 앞선 민족들이 저개발 민족들에게 여러 가지형식으로 원조를 하되 각 민족의 고유한 도덕적 가치들과 그들의 조상들로부터 전승되는 특성들을 존중할 필요가 있으며 어떠한 정치적 지배욕도 삼가야 한다. 모든 국가의 위정자들이 소수 민족들의 언어, 문화, 전통적 풍습, 경제적 자원 및 기업들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효과적으로 공헌하는 것은 확실히 정의에 합치된다. 때로는 소수 국민들이 그들에게 지워진 고통스러운 상태나 혹은, 과거의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반발작용으로 인해서 자기 민족의 특수한 요소들의 중대성을 과장하는 나머지 모든 인간들에게 해당되는 가치들을 소홀히 하고 마치 인류가정의 선익은 자국 민족의 선익을 위하여 이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이것은 잘못이다. 반대로 이러한 소수 민족들이 자기들이 처해 있는 특수한 환경에서 편익(便益)을 도모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이들이 다른 문화적 전통을 지닌 민족들과 접촉하는 것은 자신들의 정신적 총명과 마음의 완성에 적지 않게 도움이 되며, 이렇게 함으로써 다른 민족에 속하는 가치들이 자기 자신들의 살과 피로 변화될 것이다. 이것은 소수 민족들이 다른 국민들과 유대를 지속하고, 이들의 전통과 문화에 참여하기로 노력하고, 민족들의 문화발전에 지장이 되는 불화를 제거할 때 비로소 실현될 것이다. 피지배 민족들로 하여금 자신의 독립을 성취시킬 권리를 평화롭게 행사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에 대하여 가하여지는 모든 종류의 무력행동이나 강압적 조치는 중지되어야 한다. 유럽의 식민지 통치를 그리스도교적 원리에서 돌이켜 볼 때 식민주의는 그 본질적 성격에 있어서 그리스도교적 양심에 용납될 수 없다.
교회는 제민족과 제문화의 가치와 그 고유성을 이해하고 있다. 교회가 아직도 얼마나 오랜 역사의 길을 걷게 될 지는 모른다. 주님의 재림(再臨)까지는 아직도 아마 수많은 시간이 남아 있어서 지난날은 겨우 교회사의 일부분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교회는 그 사명과 본성에서 인간문화의 특수형태나 특수한 정치적 경제적 및 사회적인 체제에 얽매이지 않고 보편적인 부(富)와 발전을 바라고 있다. (⇒) 국가주의 (韓庸熙)
[참고문헌] 바오로 6세, 민족들의 발전촉진에 관한 회칙, 1967 / 사목헌장, 79 / 바오로 6세, 평화를 위한 정의의 활동 1972 / 바오로 6세, 세계안의 정의, 1971 / C.J.H. Hayes, Essays on Nationalism, 1926 / H. Kohn, The Idea of Nationalism, 19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