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젤공의회 [한] ∼公議會 [라] Concilium Basileense [영] Council of Basel [관련] 공의회 공의회수위설

바젤 공의회(1431-1442). 제17차 공의회. 교황 마르티노(Martinus) 5세(재위 : 1417-1431)에 의하여 바젤에서 소집되었고. 그의 후임 교황 에우제니오(Eugenius) 4세(재위 : 1431-1447)에 의해 추인(追認)되었다. 원래 바젤 공의회는 교회 내의 개혁을 위해 소집되었으나 교황권과 공의회 수위설을 주장하는 공의회 측의 대립으로 파쟁(派爭)에 휘말렸다. 2년간의 분쟁에서 승리한 공의회 측은 공의회 수위설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여러 가지 칙령을 반포하여 교황권을 축소시켰다. 특히 교황청에 납부하던 여러 가지 세금의 납부정지는 교황청 재정을 크게 압박하였다. 1437년 교황청과 공의회 측은 동방교회와 합동 공의회를 어디서 개최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최종적으로 결렬되었다.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대이교를 수습하는 데 커다란 공헌을 했던 공의회 수위설이 바젤 공의회에서는 오히려 이교의 원인이 되었다. 즉 공의회를 페라라로 이전하려는 교황의 결정에 불복한 공의회 측은 1439년 대립교황 펠릭스(Felix) 5세를 추대하였다. 물론 이번 이교에는 아비뇽 교황시대(1309-1377년) 이후 잔존해 있던 프랑스와 독일의 입김이 공의회 수위설 주장자들에게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1437넌 페라라로 이전된 공의회는 1439년 피렌체, 1442넌 로마로 각각 이전되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바젤 공의회 16회기 이후 결정된 사항들은 보편교회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지 않을뿐더러 교황이 인정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공의회의 결정사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 공의회, 공의회수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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