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이를 사랑하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말(이사 54:5). 구약시대에는 하느님의 백성을, 신약에는 교회를 상징하였다. 예언자 호세아는 남편인 자신의 사랑을 배신하는 아내를 끝까지 사랑한 체험을 통하여, 계약을 저버리는 이스라엘 백성의 배신과 이를 포용하는 하느님의 사랑 사이의 신비스런 관계를 설명한다. 계약을 맺는 것은 결혼하는 것과 같으며 야훼의 진노는 배신한 아내를 징벌하여 아내가 방황을 그치고 자신의 품속으로 되돌아오기를 고대하는 남편의 심정과 같다. 회개하여 깨끗해진 백성은 신랑의 사랑을 알게 된다(호세 2:20-). 이처럼 계약은 부부의 일치로 나타난다. 예레미야는 호세아의 정신을 계승하여 야훼의 사랑과 당신 백성의 배신을 대조시킨다. 이스라엘이 젊은 날 순정을 바쳐놓고(예레 2:2) 매춘부처럼 놀아났지만(예레 2:20) 야훼는 한결같은 사랑으로 이스라엘을 사랑하여 변함없는 자비를 베풀었다(예레 31:3-4)는 내용이다. 야훼의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일치는 지혜서에서 그 인격적이고 내면적인 성격이 강조되기에 이르렀다. 자신을 어머니로, 신부(新婦)로 드러내는(집회 15:2) 지혜는 성령처럼 하느님이 보낸 영적인 선물이다. 부부의 상징은 여기서 영적인 차원으로 승화되어 은총의 신비를 계시하기 전에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을 준비시켰다.
야훼의 지혜는 육신을 취하여 십자가의 신비를 남겼다. 이 신비는 신의를 저버린 신부를 사랑하는 하느님의 계시요 신부를 성화시켜 계약의 당사자로 회복시키는 일이다(에페 5:25-). 구약의 ‘배필’이 상징하는 일치의 신비는 인간이 성삼위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며 이는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피로써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여(1고린 11:25) 새 계약의 신랑이 되었다. 그리하여 새 예루살렘을 어린 양의 신부라 부른다(묵시 21:9). 예루살렘 즉 교회는 옛 계약의 구속을 받지 않는 자유부인, 천상의 예루살렘이 되었다(갈라 4:22-27).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는 은총으로 성화되어(디모 3:5) 신랑 그리스도에 걸맞는 동정녀로서 어린 양과 영원히 결합된다(묵시 14:4). 이 결합에 그리스도는 만민을 초대한다(마태 22:1-10). 인간은 은총의 도움을 받아 힘써 쌓은 공로의 실로 짜여진 결혼예복을 입고 초대에 응해야 한다. 역사의 종말에 신랑은 ‘배필’이 상징하는 일치의 갈망을 채워 줄 것이다.
[참고문헌] Marc-Francois Lucan, Spouse, Dictionary of Biblical theology, Seabury, 197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