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한성(1899~1971). 법조인. 아호는 서진(曙津). 세례명 알로이시오. 충남 논산군 은진면 내동리에서 부 백낙호(白樂鎬)와 모 천씨(千氏) 사이의 8남매 중 2남으로 출생. 대대로 천주교를 믿어온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서당에서 한문을 수학하고 경성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23년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청주법원 입회서기로 근무하였으나 일본인 판사의 민족적 편견에 대해 항의하고 맞서다가 사직하고 도일(渡日), 고등고시에 합격하였다. 1932년 귀국하여 평양, 청진, 순천 등지에서 판사로 근무하였고 이 때 일경(日警)의 요시찰 대상에 오르기도 하였다. 광복 후 대전지방검찰청 검사장, 1948년 11월 법무부차관, 서울고등법원장을 거처 1949년 대법원 판사로 승진하였고, 1951년 서울대 법대 강사, 탄핵심판관, 헌법위원회 위원 등을 겸임하였으며 1953년 내무부 장관, 1954년 국무총리서리를 역임하였다. 1955년 다시 사법부로 복귀, 대법관을 근무하였으나 1961년 5.16 군사쿠데타가 발발하자 대법관직을 사임하고 변호사를 개업, 서울변호사회 상무위원장, 서울시 수석 법률고문, 한국 신문윤리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변호사로 활약하였다. 1971년 10월 12일 뇌일혈로 쓰러져 명동 성모병원에 입원하였으나 이튿날 사망하였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金) 데레사와 3남 3녀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