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rus Damianus(1007-1072). 성인. 축일은 2월 21일. 주교. 교회개혁자. 이탈리아의 베네딕토회 신학자. 라벤나(Ravenna)의 가난한 집에 태어나 파엔자(Faenza)에서 사망하였다. 파르마, 모덴자, 파엔자에서 교육을 받고 1035년 폰테 아벨라나(Fonte Avellana)의 베네딕토회 수도원에 들어가 금욕생활을 시작하였다. 1043년경 수도원장으로 선출되어 몇 개 수도원을 창설하고, 낡은 수도원을 개혁하였다. 1057년 교황 스테파노 9세에 의해 마음에도 없는 오스티아의 주교 추기경에 임명되었고, 이 무렵부터 교회개혁에 중요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는 성직자로서 세속화와 성직매매를 하는 자에 대해서는 타협을 배제한 설교자로서 유명해 졌다. 특히 호노리오 2세와 같은 대립교황을 격렬히 비난하였다. 1059년 밀라노 교회회의를 주재하였다. 그는 몇 차례나 교황사절로서 외교적 사명을 띠고 프랑스 및 독일에 파견되었다. 1069년에도 교황사절로 독일에 가서, 황제 하인리히 4세의 황후 베르타에 대한 이혼문제에서 황제를 설득하여 무마시켰다. 1072년 고향 라벤나를 마지막 방문하고 돌아오다가 파엔자의 산 마리아 수도원에서 병사하였다. 유해는 현재도 산 마리아 대성당에 묻혀 있다. 1828년 교황 레오 12세에 의해 교회학자로 추서되었다.
그는 생전에 많은 저서를 간행하여 수도원의 엄격한 훈련과 고행을 명령하였다. 교리적으로는 ‘정죄’(淨罪), ‘성찬’ 및 성직매매자에 의해 관리되는 ‘성전례’가 정당치 않음을 주장하였다. 또한 11세기 스콜라철학 부흥기에 있어서 스콜라에서의 인문학과 중에서 논리학이 최상위에 놓여야 한다는 이성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해, 신학자 입장에서 이에 반대하고, 철학은 ‘신학의 시녀’와 같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주요저서로 성직자의 결혼을 반대한 ≪Liber Gomorshianus≫와 성직매매를 반대한 ≪Liber Gratissimus≫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