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nardus, Claravallensis(1090-1153). 클레르보(Clairvaux)의 성인. 축일은 8월 20일. 대수도원장. 신학자. 교회학자. 프랑스 디종(Dijon)의 귀족 출신. 1112년 부르군드의 30명의 젊은 귀족들과 함께 시토(Citeaux)회에 입회, 탁월성을 인정받고 3년 뒤 클레르보에 새 수도원을 세우고 원장이 되었는데, 이곳이 시토회의 주요 수도원 중의 하나가 되었다. 1128년 트로예(Troye) 시노드에 간사로 참가하였으며 1130년 교황 선거에서 뒤에 인노첸시오 2세가 된 인물을 지지하여 대립교황을 물리쳤으며 대신에 교황으로부터 시토회는 특전을 받았다. 상스(Sens) 공의회(1140년)에서 아벨라르(Abelard)를 단죄, 또한 랭스(Reims) 공의회(1148년)에서 신학적 문제로 포레(Gilbert dela Porree)를 공박하였다. 2차 십자군운동을 일으키는데 공헌하였으나 원정의 실패는 그에게 비탄을 안겨 주었다. 1174년 시성 1830년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그가 당시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중의 하나가 된 것은 지성뿐만 아니라 그의 성성(聖性)과 인격 때문이었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영향을 받은 논문 <은총과 자유의지에 대하여>(De gratia et libero arbitrio)는 자신의 시대에 보내는 중심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여기서 “자유의지를 버리면 구원될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은총을 버리면 구원의 방도가 없다. 그러므로 구원작업은 이 두 가지의 상호작용 없이는 성취될 수 없다”고 하였다. 또한 ≪De Diligendo Deo≫는 중세의 가장 탁월한, 신비주의에 대한 저서중 하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