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ket, Thomas(1118?-1170). 성인. 축일은 12월 29일. 주교. 순교자. 런던에서 태어나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처형, 순교하였다. 노르만의 중산층 이주자의 아들인 그는 파리에 유학한 후 런던에서 도매상인의 서기로 잠시 있다가 캔터베리 대성당 대주교 테오볼드(Theobald)에게 고용되어 있으면서 볼로냐에 유학하기도 하였다. 테오볼드 대주교에 의해 캔터베리 부주교(副主敎)로 발탁되었다. 1154년 테오볼드의 추천으로 젊은 왕 헨리 2세를 알현하고 대장대신(大藏大臣)에 임명, 왕과의 친교가 깊어졌다. 베케트는 왕의 희망하는 바와 그에 대립되는 교회의 이익을 조화시키려고 시도하였다. 1162년 캔터베리 대주교로 선임되자, 장차 왕과의 충돌을 지하지 못하게 될 것임을 알면서도 그의 권고에 못 이겨 취임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교회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엄격한 태도로 왕을 대했으며, 처음에는 세제(稅制)에 관해, 이어서 죄를 범한 성직자에 대한 재판문제에 관해 왕과 대립하였다. 1164년 왕은 범죄성직자의 재판을 교회의 손에서 국가로 이관하기로 결정한 이른바 <클라런던 법>(Constitutions of Clarendon)의 시행, 성직자들이 로마교황에 대한 탄원의 금지 등 각종 개혁을 단행함으로써 교회권을 압박하였다. 베케트는 이에 반대하여 교황 알렉산데르 3세에게 호소하기 위해 로마로 갔으며, 이로 인해 영국 교회로부터 파문당하였다. 그로부터 5년간 외국의 수도원을 떠돌아다니며 투쟁한 끝에 1170년 마침내 왕과의 화해가 성립 귀국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반대파 주교들이 로마교황에 대한 복종을 서약하지 않는다면 용서할 수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왕의 격분을 사게 되어, 그 해 12월 29일 왕이 파견한 4명의 기사(騎士)에 의해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처형당하여 순교하였다. 이 살해행위는 전체 유럽을 분격케 하였다. 그의 무덤에서 일어난 여러 기적들이 보도되었다. 1172년 왕은 그의 무덤 앞에서 공식적으로 죄를 회개하고, 교황에게 복종할 것을 맹세하였다. 1173년 교황에 의해 시성(諡聖)되자 그의 무덤에는 순례자들이 밀물처럼 뒤를 잇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왕은 전적으로 교황에게 복종하게 되었고, 영국에서 교황 지상권은 존속한다는 것이 재확인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