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 그의 백성을 불러 특별한 목적의 도구가 되게 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하느님 자신이 베푸는 은혜와 구원을 풍성히 받게 한다는 성서상의 가르침이다. 소명(召命)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구약의 카라(qara)는 ‘부르다’의 의미를 가지며 ‘초대하다'(1사무 16:3), ‘소환하다'(2사무 1:15), ‘이름을 부르다'(창세 11:9)라는 뜻으로도 쓰였다. 즉 하느님이 그의 백성을 선택하여 특별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모세(출애 3)와 예언자들(사도 6, 예레 1:4-10, 아모 7:14-15)을 불렀던 사실에서 부르심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신약에서는 Klesis로 카라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신약 전체를 통하여 하느님이나 그리스도 성령이 사람을 부르시는 행위를 가리킨다.
부르심에 대한 교리는 바울로의 신학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바울로의 문헌에서 부르심은 그리스도교 안으로의 초대가 일차적이고, 이를 통한 하느님의 목적과 행동의 전개는 부르심의 예정, 부르심, 영광으로 이어진다. 즉 하느님은 인간구원의 영광스러운 계획에 모든 사람을 참여시키기 위해 유태인뿐만이 아니고 모든 이방인들도 부르셨다(로마 9:24). 바울로는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현세적 생활에서 적어도 다음과 같은 사항을 지켜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첫째, 부르심이 머무르는 곳은 교회다. 그러므로 각 개인은 교회의 공동체적 생활에 참여해야 한다. 둘째,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건전하고 책임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셋째,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생활 속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임을 깨닫고, 자기가 해야 할 역할과 임무를 수행해 나가야 한다. 넷째,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합심,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중세시대에는 성직제도, 수도원제도의 발달에 따라 성속(聖俗)의 구별이 생겨나고, 교회에서는 성직만을 부르심(vocatio)이라고 생각하였다. 대체로 스콜라신학에서는 성직자 우위와 일반직에 종사하는 자의 하위적 개념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모든 피조물이 모두 하느님의 역사 속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공동선을 이뤄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서 이웃에 봉사하며 노동하는 직업은 모두 상하의 구별 없이 부르심에 속할 수 있겠다. 즉 성서에 있어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공통된 부르심이 있었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아들이 되는 일이었고,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지 하느님에 대해 복종해야만 한다는 의미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서 자신은 왜 창조되었고, 하느님은 무엇을 위하여 자신을 부르고 계시는가, 그러한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의 문제가 곧 신앙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구원은 인간이 이룩한 성과나 업적만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은혜와 믿음으로써 주어지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L. Brancherau, De la Vocation sacerdotale, Paris 1896 / J. Lahitton, La Vocation sacerdotale, ed. 2, Paris 1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