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o(1032-1101). 카르투시오 수도회의 창설자. 성인. 축일은 10월 6일. 콜로뉴에서 출생, 카탄자로 근처 라 토르(La Torre)에서 별세. 귀족 가문에 태어나 철저한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 외에는 유년시절에 관하여 알려진 것이 없다. 코로뉴에 있는 성 퀴니베르(St. Cunibert) 학교에서 학업을 시작하여 랭스(Reims) 학교에서 끝마쳤다. 랭스에서 의전 사제가 되었고 랭스 학교에서 교양과목과 신학을 가르쳤으며 이 학교의 교장을 역임(1056년), 마침내 랭스 대교구의 사무국장이 되었다(1075년).
교황 그레고리오 7세의 개혁운동에 동조하여 교회쇄신에 앞장섰으며 그의 영향으로 성직매매 사건으로 말썽을 일으킨 대주교 마나세 1세가 퇴위하게 되었다(1080년). 세속적인 야망이 없었고 주교의 임명을 사양하였다. 퇴위사건이 끝나기 전 그리스도의 가난한 자들(pauperes Christi)의 생활 즉 수도생활을 하겠다고 서원하였고, 동료 두 사람을 데리고 랭스를 떠나 사막으로 갔다가(1082년) 다시 알프스 산 속에 들어가서(1084년) 약간의 성직자들과 평신자들과 더불어 6년간 수도생활을 하였다. 그는 카르투시오 회헌을 쓴 일도, 수도회를 설립할 의도도 없었으나 첫 카르투시오 회원들이 생활한 규범이 회헌으로 정리되고 그를 창설자로 추앙하였다. 제자인 교황 우르바노 2세의 부름을 받고 로마에 갔으며(1090년) 주교의 임명을 다시 사양하였으나 시칠리의 로조(Roger of Sicily)의 물질적 도움을 받아들여 라 토르의 산타 마리아 수도원을 건립하였다. 현존하는 그의 저술로는 시편의 주석과 바울로의 편지에 대한 주석 및 죽음직전에 남긴 신앙의 고백이 있다.
브루노의 육신은 산타 마리아의 수도원 묘지에 묻혔다가(1101년) 그 뒤 그곳 성당으로 옮겼고 다시 성 스테파노 성당에 옮겨 안치하였다(1193년). 1514년 교황 레오 10세가 그를 성인품에 올렸고 그의 축일은 1623년 로마 전례에 도입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