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사회의 상호 작용이나 영향의 과정을 사회화라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은 늘 어떤 집단사회의 성원이며 또 현대의 산업사회의 성원으로서 생활을 영위해 가기 때문에 항상 동일화(同一化)해야 살아갈 수 있는 필연적 관계에 놓여 있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 일어나는 동일화 현상을 사회화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위에 든 두 가지 경우 말고도 사회화라는 용어는 광범하게 국가 또는 공적인 기관에 의한 산업의 통제 · 관리 · 소유를 가리킬 때도 쓰이며, 나아가 사회주의화(社會主義化)를 뜻할 경우와 그렇지 않을 경우가 있게 된다.
이 용어는 교황 요한(Joannes) 23세의 회칙(回勅) 2부에 처음 나타나며, 그 시초는 ‘rationum incrementa socialium’이라는 말로부터 비롯되었다. 이탈리아 · 프랑스 · 스페인어역 회칙에서는 각기 socializaione, socialisation, socialization으로 사용되었다. 사회화라는 용어가 흔히 ‘사회주의’와 유사한 것으로 잘못 생각되어져 두 용어를 같은 개념으로써 오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였다. 요한 23세가 썼던 사회화라는 말의 의미는 집단활동, 공동생활, 사회단체 또는 그밖의 조직체 등의 활동을 통하여 부유층의 숫자를 많이 발전시켜 나감을 뜻했으며, 현대의 생활을 특징적으로 드러내 주는 사회적인 협동을 향상시켜 나가기를 바라는 경우에 사회화라는 말을 썼다.
사회화의 과정은 근본에 있어서 인간의 근원적인 사회적 소질에 바탕을 두는 것이다. 인간은 그 인격의 독립적인 존재, 독자성, 독자적인 가지와는 관계없이 동료 인간과의 공동사회 속에서 생활하며, 그 생명적인 자신의 과제를 다해 가야만 하는 운명을 띠고 있다. 그러므로 현대의 생활이 인간과 인간의 상호의존적인 상황에 놓여 있으며, 이러한 상태에 대한 자발적인 인간의 응답이라는 점에서 사회화의 과정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교황 비오 6세의 회칙에 보면 이 사회화라는 말은 정치적인 국가와 개인적인 시민 사이의 중간에 끼어서 자주적이고 조직적인 생활을 꾸려나가야만 되는 변화를 내포하고 있는 조직사회 속에서 한결 두드러지게 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이리하여 요한 23세의 회칙에서는 사회화라는 용어가 협의적이거나 순 이론적인 해석을 떠나 있지만 비오 6세의 회칙이 말하고 있듯이 그러한 사회의 본질을 부여하고 있는 의미의 사회화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요한 23세의 회칙에서 언급하고 있는 사회화의 과정은 누구나 생활을 부유하게 하고 누구나 능력껏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면에서 개인적인 도움을 준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사회집단이 자치권을 좋아하듯이, 그들의 일에 적극적으로 개인적인 관여를 함으로써 개인적 주도권을 숨막히게 하기 쉬운데, 이런 경우 위기가 닥치게 마련이다.
사회화와 사회주의(socialism)의 서로 다른 점은, ① 사회주의라는 용어는 어떤 투로 어떤 경우에 쓰이든지 간에 정치적인 지배로 집약됨을 뜻하나, 사회화라는 말은 요한 23세가 분명히 밝혔듯이 정치적인 지배나 권세의 무소속자를 뜻함이 결코 아니라, 다만 사회집단의 성장 발전을 바란다는 의미로 쓰이는 것이며, ② 사회주의가 공적 또는 국가적인 산업소유권의 중요한 총량(總量)을 포함하고 있음에 반하여 사회화는 그렇지가 않고, ③ 사회주의는 국가경제를 위한 중요계획을 갖고 있지만, 사회화는 이왕 대조적으로 보다 저소득수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의 경제적인 창의력을 촉진시켜 준다. 그런데 공적 또는 국가기관에 의한 산업의 통제 · 관리 · 소유를 말할 경우, ‘사회주의화’의 뜻으로 ‘사회화’라는 용어를 쓸 때가 있는데, 이것은 생산 수단의 사회적 소유를 토대로 하고 있는 사회체제 및 그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사상 운동 즉 사회주의, 이를테면 비(非)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 = 사회민주주의나 마르크스주의의 사회주의 = 공산주의에서 그러한 것이다. 그렇지만 생산수단의 사유(私有)를 인정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사회화’와 ‘사회주의화’는 엄격히 구별되어 쓰이고 있다.
[참고문헌] 요한 23세, 어머니와 교사, 1961 / 요한 23세, 지상의 평화 1963 / 사목헌장, 19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