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해여지전도 [한] 山海與地全圖

중국 선교사인 예수회 소속 리치(Matteo Ricci, 利瑪寶)가 제작한 동양최초의 근대 세계지도라고 알려져 있다. 산해여지전도는 조경판(肇慶版, 1584), 조심당판(趙心堂版, 1584-1599), 남경판(南京版, 1600), 귀주판(貴州版, 1604)등이 있었다고 하나 현존하는 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조경판과 남경판은 리치가 직접 제작했다고 하며, 나머지 둘은 방각본(倣刻本)으로 각각 조가회(趙可懷), 곽자장(郭子章)에 의해 간행되었다고 전한다. 지도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지도의 내용과 규모 등을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다음 몇가지의 문헌을 통하여 짐작할 수 있다. 즉 리치의 <곤여만국전도>(坤與萬國全圖, 1602) 오좌해(吳左海)의 서문, 풍응경(馮應京)저 재임증(載任增)역 ≪월령광의≫(月令廣義, 1602), 이수광(李晬光)의 ≪지봉유설≫(之峰類設), 알레니(J. Aleni, 艾儒略)의 ≪이마두선생행적≫(利瑪竇先生行蹟), 리치의 ≪입연기록≫(入燕記錄), 바들리(J.F. Baddeley)의 <마테오 리치의 중국지도>(Father Matteo Ricci’s Chinese World-Map, Gegraphical Journal, Oct. 1917)등이 <산해여지전도>의 자료를 담고 있다. 이들 문헌에 의하면 리치는 1583년 광동성 조경(肇慶)에 도착하여 중국 선교를 시작하면서 선교의 한 방법으로 서양식 세계지도를 번역하였다 한다. 최초의 판인 조경판은 조경총독 왕반(王伴)의 요청으로 오르텔리우스(A. Ortelius)의 세계지도≪Treartum Orbis Terrarum≫(1570)를 한자로 번역, 표기했다고 한다. 다만 대형의 한자를 넣기 위해 도폭(圖幅)을 원도(原圖)보다 확대하였다. 지도는 중국인 학자들의 호평을 받았고 이로써 리치는 남경과 북경에 들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조경판은 리치가 중국에 도착한 지 2년만에 제작되어 한문번역에 미숙함이 많았고 따라서 리치 자신도 오류가 많았음을 시인하였다. 그러던 중 남경 오좌해(吳左海)의 도움으로 남경판을 제작할 수 있었다.

[참고문헌] 金良善, 明末淸初 耶蘇會宣敎師 製作한 世界地圖, 한국천주교회사논문선집, 제1집, 한국교회사연구소,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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