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재상서 [한] 上帝相書

정하상(丁夏祥, 1795-1839)이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호교론서(護敎論書). 저자인 정하상은 신유(辛酉)박해 때 순교한 정약종(丁若鍾)의 둘째 아들로, 신유박해로 와해되기 직전에 놓여있던 조선 교회를 재건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다하였다. 그의 꾸준한 노력으로 앵베르(Imbert, 范) 주교를 비롯한 성직자를 영입할 수 있어 조선 교회는 독립된 교구로 발족케 되었으나,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그는 체포될 것을 예상하고 ≪상재상서≫[재상에게 올리는 글]을 저술해 두었다. 1839년 6월 1일 그가 체포되자 그 다음날 이 글을 종사관(從事官)에게 주어, 재상인 이지연(李止淵)에게 전달케하였다. 이 글은 별첨형식의 우사(又辭)까지 합쳐 모두 3,400여자에 달하는 짤막한 것인데, 천주교 기본교리의 설명, 호교론, 신교의 자유를 호소한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즉 첫째 부분에서 정하상은 보유론(補儒論)적인 견지에서 천주의 존재를 노하고, 천주십계를 들어 천주교의 실천윤리를 설명하였으며, 둘째 부분에서는 호교론을 전개하여 천주교가 무부무군(無父無君)의 종교가 아님을 강조하였다. 또한 말미에다 ‘우사’라는 글을 첨가하여 조상제사와 신주 모시는 일이 이치에 맞지 않음을 지적하였다. 셋째 부분은 천주교가 주자학(朱子學)적 전통에 어긋난 것이 아니며 사회윤리를 바르게 하는 미덕이 있음을 변증하여 신앙의 자유를 호소하였다. 이상과 같이 정하상은 ≪상재상서≫를 통하여 천주교의 진리를 밝혀 유학자에게 과감히 도전한 것인데, 따라서 이 글은 19세기 중반기의 천주교 신도들이 가지고 있던 종교적인 열정과 교리에 대한 이해도를 가늠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한편 이 글은 1887년 홍콩에서 정하상의 약전을 첨부, 출판되어 중국 선교에 널리 이용되기도 했으며, 그밖에 블랑(Blanc, 白圭三)주교의 서명이 들어 있는 필사본과 한글역본들이 전해오고 있다.

[참고문헌] 上宰相書, 나자렛 인쇄소, 홍콩 1887 / 崔鍾萬, 丁夏祥의 上宰相書 硏究, 神學展望, 제44호, 大建神學大學, 광주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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