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1. 말씀읽기: 루카 3,1-6
세례자 요한의 설교 (마태 3,1-12 ; 마르 1,1-8 ; 요한 1,19-28)
1 티베리우스 황제의 치세 제십오년, 본시오 빌라도가 유다 총독으로, 헤로데가 갈릴래아의 영주로, 그의 동생 필리포스가 이투래아와 트라코니티스 지방의 영주로, 리사니아스가 아빌레네의 영주로 있을 때,
2 또 한나스와 카야파가 대사제로 있을 때, 하느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즈카르야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
3 그리하여 요한은 요르단 부근의 모든 지방을 다니며,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4 이는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한 말씀의 책에 기록된 그대로이다.“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5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6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1 티베리우스 황제의 치세 제십오년, 본시오 빌라도가 유다 총독으로, 헤로데가 갈릴래아의 영주로, 그의 동생 필리포스가 이투래아와 트라코니티스 지방의 영주로, 리사니아스가 아빌레네의 영주로 있을 때,
티베리우스 황제(Tiberius Claudius Nero Caesar, BC42~AD37)는 제 2 대 로마황제(기원후14~37)입니다. 아버지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와 어머니 리비아 사이의 맏아들로 태어났으나 이혼한 어머니가 옥타비아누스(나중의 아우구스투스황제)와 재혼하자 어머니를 따라갔습니다. 여러 차례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의부인 황제를 도와 후계자로 지명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아우구스투스의 통치이념에 충실하여 선정을 베풀었으나 세력이 증대된 친위대장 L.A.세이아누스를 중용(重用)하여 그에게 통치를 맡기고 26년 카프리섬으로 은퇴함으로써 세이아누스가 제위찬탈을 음모하게 되었습니다. 31년 세이아누스는 음모가 탄로나 처형되었습니다. 티베리우스는 만년을 대부분 카프리섬에서 지냈으며 후반의 공포정치와 긴축재정단행 및 친밀성 없는 성격 때문에 민중의 인기를 얻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치세에 관한 역사적 자료가 타키투스․수에토니우스 등 원로원 옹호파인 역사가의 입장에서 기록되어 있어 그의 사상과 성격을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빌라도는 빈틈없고 강압적이며, 잔인하였으며,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재직한 10년 동안 그는 자신에게 법과 질서를 유지시키는 탁월한 능력이 있음을 입증하였습니다. 그는 어떤 문제 거리가 있을 때 그것이 위험한 지경에까지 이르기 전에 문제의 소지를 없애버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효과적인 통치 비결은 정치적인 항의와 종교적인 항의를 구별하지 않음으로써 혁명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표적은 동기나 슬로건이 아니라 항의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만약 빌라도의 전략에 빌라도 자신처럼 헌신하는 충성스럽고 유능한 유다인 상대자가 없었다면 그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가야파가 바로 그러한 상대자였습니다. 이전의 대사제 가운데 이같이 높은 지위를 이렇게 오랫동안 지켰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헤로데 시대 이후부터 대사제는 통치자가 마음 내키는 대로 임명하고 해임하였습니다. 대사제의 성의(聖衣)를 정치 권력자들이 자물쇠를 채워 보관하였고, 대사제가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축제일에만 개봉하였습니다. 이렇게 대사제들은 애당초부터 꼭두각시 왕이나 총독의 손아귀에 단단히 붙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2 또 한나스와 카야파가 대사제로 있을 때, 하느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즈카르야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
그러나 가야파는, 한 사람만이 아니라 두 사람의 총독을 섬길 수 있는 특별한 자질을 가지고 있었던 유일한 대사제였습니다. 빌라도처럼 고압적인 총독 밑에서도 온전히 10년 임기 동안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는 것은, 틀림없이 가야파가 백성들의 분노가 끓어올라 폭력적인 반로마 시위로 변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어떤 심각한 소요가 일어나도 그들의 관계는 금이 가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작은 불씨가 큰 불꽃으로 번지기 전에 꺼버리는 대사제의 기술을 웅변적으로 증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야파도 혼자 힘만으로는 그의 일을 수행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의회, 곧 산헤드린을 구성했을 것입니다. 그 위원들은 로마 당국에 대항하는 어떤 소요의 주동자가 아무리 결백하고 순수하다 할지라도, 소요가 일어나면 그에 따라 심각한 결과들이 발생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정치성이 띄지 않은 인물일지라도 그가 도래하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기쁜 소식을 설교할 때는 목숨을 내놓고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만약 그의 회개에의 부름이 너무 설득력이 있어서 군중들이 그의 주변에 몰려들어 그의 말을 듣고 희망을 갖는다면, 그의 말이 갖는 힘은 결국 자신에게 죽음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산헤드린에 의해서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제국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모든 사람들은 종교적인 동기에서가 아니라 정치적인 동기에 의해 움직였습니다. 대사제 역시 비록 성전 안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자이고, 속죄일에 모든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하느님의 용서를 구하기 위해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된 유일한 사람이었지만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그 역시 교활한 죄인이었습니다. 모세의 다섯 책들과 구전 율법의 보고인 미쉬나(Mishinah)의 어느 곳에도, 왕이나 왕자 혹은 군주로부터 임명받은 자가 대사제가 된다는 내용은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경에 의하면 대사제는 아론, 엘리아잘, 비느아스의 직계 후손들의 몫으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율법의 관점에서 보면, 실상 헤로데 시대 이후에 대사제직을 맡은 사람들은 모두 비합법적인 대사제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다만 왕권에 의해 안수 받은 정치적 도구에 불과했고, 예수님시대 유다교의 세 분파, 즉 사두가이파, 바리사이파, 에쎄네파 지도자들의 묵계적 승인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이러한 분파들을 추종하는 자들은 제각기 다른 분파의 추종자들을 이단이요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는 자들이라고 보았지만, 로마 당국자들에게 이것들은 세 가지 상감(象嵌: inlay)을 지닌 하나의 모자이크로만 보였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각 분파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국가와 자신들의 관계를 정하는 두 영영의 원칙과 그들 상호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공존공생의 원칙을 고수했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의 추종자들에게 카이사르의 것을 카이사르에게 돌려야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돌릴 수 있게 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세 분파가 서로 사이좋게 함께 살기 위해 평화적 공존 원칙을 폈습니다.
① 산헤드린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하느님이 문서 율법만을 계시하셨다고 믿었고,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하느님이 두 가지 율법, 즉 문서율법과 구전율법을 주셨다고 가르쳤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만약 어떤 산헤드린이 정치적 기준에 따라 재판을 행한다면 참석할 수 있었지만, 만약 종교적 율법의 기준에 따라 재판을 행한다면 그런 산헤드린에는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산헤드린은 종교적인 근거가 아니라 정치적인 근거에 기초하여 재판하였습니다.
실제로 요세푸스가 그의 저작들에서 산헤드린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그것은 언제나 황제나 왕 혹은 대사제에 의해 지명된 어떤 자문회의를 가리킵니다. 그가 로마의 의회와 같은 항구적인 법적 기구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대개 불레((boule)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헤로데가 그의 아들들이나 부인들 혹은 다른 인척들을 반역죄로 처형하고자 할 때는 산헤드린을 소집했습니다.
그 해는 기원 후 28년, 아니면 29년이었다. 본시오 빌라도는 유대의 집정관(총독)이었고(기원후 26-36년) 헤로데 안티파스는 갈릴래아의 분봉왕(영주)이었으며(기원전 4 년 – 기원후 39년), 헤로데의 동생 필립보는 호수 북동쪽에 위치한 이두래아와 트라코니티스의 분봉왕(영주)이었습니다(기원전4년-기원 후 34년).
세례자 요한은 아버지 즈카르야와 어머니 엘리사벳의 아들입니다. 둘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상태였지만 하느님께서 은총을 베푸셔서 요한을 낳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요한은 선택하신 것입니다. 이제 그 요한을 부르셨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요세푸스가 의롭고 자비로운 교사들의 목소리라고 인정했던 사람입니다. 대부분의 유다인들은 요한을 비정치적인 가르침을 준 義의 설교가일 뿐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요한은 로마에 대한 봉기를 요구하지 않고 정의로운 삶, 정의로운 행동, 경건한 헌신을 촉구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헤로데 안티파스가 요한을 사형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요세푸스가 그린 요한의 초상은, 당시의 카리스마적 교사들 가운데는 비정치적인 가르침을 전하면서도 당국자들에게 두려움을 갖게 했던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 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것처럼,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세례자는 이전 시대에 하느님께서 파견하신 위대한 인물들이 하던 일을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광적인 묵시주의자들이나 인본주의적인 지혜교사들, 또는 바리사이적인 엄격주의자들, 랍비적인 전통주의자들, 그리고 왕국을 꿈꾸고 있던 열심당원들의 계열이 아니라 예언자들의 계열에 속했습니다. 세례자는 하느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그 말씀에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요한의 일생을 지배하는 힘이었습니다.
3 그리하여 요한은 요르단 부근의 모든 지방을 다니며,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참된 회개는 언제나 “나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라는 물음을 던지게 됩니다. 이 물음은 한 인간의 회개의 진실성 여부를 보여줍니다. 인간이 생활 태도를 바꾸고 진심으로 회개하였음을 보여 주는 행동은 순수한 마음으로 자선을 베풀고 가진 것을 나누는 데서 드러납니다.
“회개”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매순간순간에 자신의 가장 좋은 것을 드러냄으로써 자기 자신이 되는 것입니다. 즉 군인이 되었든 세금징수원이 되었든, 법률가가 되었든 교황이 되었든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가 머물며 활동하는 바로 그곳에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요한의 세례는 요르단 강물에 몸을 담금으로써 이루어졌습니다. 이 세례는 죄 고백과 함께 이루어졌는데, 그것은 회개하겠다는 결심을 인정하는 표시였습니다. 동시에 세례를 받는 사람에게 하느님의 용서를 보증하는 표시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요한의 세례는 다가올 심판을 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이 세례를 받은 사람은 종말에 하느님의 새 백성의 일원이 될 자격이 생기고, 또 그 길을 잘 준비하는 방법이 됩니다. 그러나 진실한 회개와 함께 생활 태도도 참되게 바꾸는 것이 전제 되어어야 합니다.
요한의 활동무대는 요르단 강 일대로 국한되었는데 강의 남쪽 유역까지도 포함되었습니다. 요한은 이 지방을 돌아다니며 설교하였습니다. 그곳은 좁은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팔레스티나를 두루 다니면서 가르치실 것이며, 그 뒤를 이어 사도들은 팔레스티나를 넘어 온 세상에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말씀이 전파되는 지역은 점점 확대되어 갔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사자였습니다. 그는 주인보다 앞서 가면서 이루어져야 할 일을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요한이 선포한 메시지는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였습니다. 회개는 하나의 필수 요건입니다. 인간은 회개함으로써 하느님께 향하게 되고 그분의 현존과 그분의 뜻을 깨닫게 됩니다. 동시에 죄의 길에서 돌아서고 그 죄를 뉘우치게 됩니다. 이것이 회개의 본질입니다.
4 이는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한 말씀의 책에 기록된 그대로이다.“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이것은 70인 역 그리스말 성경의 인용이지만, 말 그대로는 아닙니다(이사야40,3-5).
“3 한 소리가 외친다. “너희는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사막에 길을 곧게 내어라. 4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거친 곳은 평지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되어라. 5 이에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리니 모든 사람이 다 함께 그것을 보리라. 주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다.”(이사야 40,3-5)
”
여기에서 이사야가 기록하고 있는 것은 자신들을 다시 되돌아오게 해 주신 야훼 하느님의 지도 아래 바빌론의 유배생활에서 풀려나 돌아오는 히브리인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한 선구자가 돌아옴을 알려야 하고, 바빌론에서 팔레스티나로 가는 사막을 지나는 곧은 길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 히브리인의 해방은 예수님께서 행하실 사탄의 노예로부터 풀려날 인류 해방의 그 전조였습니다.
이 말씀은 원래 유배지에서 귀환하던 사람들에게 건네졌던 메시지가 새롭게 해석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바빌론에서 구해 내어 고국으로 인도하시면서 앞장서서 행진하셨습니다. 그 길이 나 있던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는 그 소리를 듣는 사람들에게 왕의 행차 길을 준비하도록 촉구하였습니다. 요한은 그리스도를 알리는 그 선구자로서 사람들을 회개시켜 예수님을 받아들이도록 마음을 바로 잡아 줄 것입니다.
5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세례자 요한은 주님의 길을 미리 준비하고, 주님의 길을 고르게 하기 위해서 미리 파견된 엘리야 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영광을 보기 위해서는 가린 것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 져야 합니다.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야 합니다.
너와 내가 서로 갈라져서 깊게 페인 골짜기는 서로 화해하고 용서하여 그 골을 메워 평탄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나의 교만과 어리석음으로 쌓아진 산과 언덕도 회개를 통하여 낮추어야 합니다. 열심히 회심하고 살아가려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굽은 마음과 거친 길을 평탄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영광을 볼 수 있고, 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준비할 때 나는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6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하느님의 구원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이제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고, 예수님께서 오시면 사람들은 예수님을 볼 것입니다. 하느님의 구원을 볼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1. 내 마음에 깊게 페인 골짜기가 있습니까? 나는 그것을 메우려고 어떻게 노력하였습니다.
2. 굽은 마음과 거친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어떻게 해야 교만의 산과 언덕을 낮출 수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