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명학교(箕明學校)와 성모여학교(聖母女學校)의 후신(後身). 1898년에 평양의 제2대 본당신부로 부임한 르 메르(Le Merre, 李類斯) 신부는 평안도 전지역을 관장하면서 포교에 전념하는 한편, 교육사업에도 눈을 돌려, 1905년 9월 1일 관후리 천주교회 안에 남자 교육기관인 기명학교를 설립하고, 1906년 5월 1일에는 여성에게도 신학문(新學問)을 배울 기회를 주기 위하여 성모 여학교를 설립하였다. 처음에 20평과 10평 규모의 교실 2개를 가지고 유아반과 소학교반으로 나누어 교육을 실시하였으나, 사방에서 아동들이 너무나 많이 모여들었으므로 다시 교실을 새로 증축하여 여학교를 따로 신설한 것이다. 이에 여학생을 담당케 하기 위해 서울의 샤르르트 성 바오로회의 수녀들을 교사로 초빙하여 학생지도와 포교사업에 봉사케 하니 학생수는 날로 늘어나고 전교사업에도 크게 공헌하였다.
1927년 평양교구가 설립되면서 1929년 3월 15일에 기명과 성모의 두 학교를 병합하여 성모보통학교로 승격 개칭하게 되었고, 1936년 10월에는 상수구리(上水口里)에 3층 철근콘크리트 현대식 건물을 신축하였는데, 성모보통학교는 날로 발전하여 명실공히 평양 굴지의 명문고가 되었다. 이에는 30여년간 헌신적으로 봉사한 성 바오로회 수녀들의 공이 컸다. 그들은 1940년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에 사업을 인계하고 서울 본원으로 돌아갔다. 1945년 광복후 공산당 치하에서 몰수당하여 폐쇄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