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삼위의 제1위, 성서와 교리발전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구약성서에서 성부를 상징하는 말을 분명히 사용한 예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주님, 최고자, 창조주, 구원자, 계약의 당사자 등의 개념으로 하느님의 부성(父性)을 느끼었다. 고대 희랍인이 제우스신을 아버지로 여긴 인간 심리적인 경향과는 달리 이스라엘인은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야훼의 부성을 느꼈다. 야훼는 만물의 창조행위에서 그의 부성이 드러나고 의미 깊어졌으며, 이스라엘인을 이집트의 억압에서 구원하여 시나이산의 계약에서 성가정으로 결집함으로써 가장으로서의 야훼의 모습이 드러났다. 홀로 은혜를 베푸시고 자상하시며 인격적인 성부께서 때때로 정의의 팔을 휘두르신 것도 계약의 약속에 대한 성실성으로 풀이함으로써 야훼의 부성을 확인하는 증거로 여겼다.
야훼의 부성에 관한 관념은 신약성서에서 두 가지 면에서 전개되었다. 첫째는 친밀성이다. 예레미야(J. Jeremiah)의 연구에 따르면, 예수께서 친히 아라메아말 ‘아빠'(Abba)를 썼다 하며, 제자들을 위한 기도(요한 17장)에서 그들이 같은 말로 성부를 부르도록 하였다. 로마 8:15와 갈라 4:6에서 ‘아빠’는 그리스도인이 내주하시는 성령에 힘입어 부를 수 있는 이름이다. 신약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그리스도인은 성부의 진정한 아들이 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구약성서에서는 하느님이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아버지로 계시되었으나 신약성서에는 하느님이 피조물과의 관계 뿐 아니라 성자와의 관계에서 아버지로 나타난다.
381년 콘스탄티노플 1차 공의회를 전후하여 삼위일체 교리에 관한 관심은 성부에 관한 역사적인 개념이 아닌 존재론적 개념에 쏠리었다. 그 이유는 하느님의 종속위격을 주장하는 자들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필요했을 뿐 아니라, 하느님의 부성에 관하여 계시된 이외의 것은 당연한 것으로 전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 내용이 그리스도교 신앙과 신학에서 간과되어 왔으므로 다시 탐구해 내야 하게 되었다.
하느님의 부성은 복수 위격의 문제에서 중요할 뿐 아니라 구세사에서 시작이요 마침이신 성부께 우리가 돌아간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내주하시는 성령에 힘입어 아들이 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성부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신약에서 달성되는 구약의 완성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