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프랑스 부르군드지방 시토(Citeaux)에서 성 로베르토(St. Robertus de Molesme, ?~1111)가 설립한 수도원에서 시작된 수도회. 회의 이름은 모원의 지명에서 비롯되었다. 성 베르나르도(St. Bernardus de Clairvaux)의 기여로 크게 발전하였으며, 곧 서부유럽으로 확산되어 13세기 중엽에는 680여 개의 소속대수도원들이 있었다.
은수적(隱修的)인 수도회의 생활양식으로 교회, 제구(祭具), 제의(祭衣) 등이 매우 소박하며 성 베네딕토의 회칙을 기초로 한 규범을 준수하여 단식, 침묵, 단순노동 등이 매우 엄격하게 준수되었다. 1119년 교황 갈리스도(Callistus) 2세에 의해 인가된 ‘사랑의 헌장’(Charta Caritatis)이 회헌이 되었으며 이런 시토의 규정들은 다른 중세수도원들, 특히 의전수도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17세기에 시토회에 각 국가단위의 구심점들이 형성되자 시토에 있는 수도원은 국외 시토회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였다. 그러나 초기의 엄격한 회칙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려는 운동이 시작되어 이것은 라 트라프(La Trappe)의 수사들에 의해 실현되었다. 1902년 레오(Leo) 13세 때 트라피스트회는 시토회에서 ‘엄률 시토회’로 분리하여 독립하였고, 이전의 시토회는 ‘성 시토회’로 존속하였다. 1898년 시토 대수도원이 복구되었을 때 엄률을 채택하였으며 로마에 거주하는 시토의 아빠스는 엄률시토회의 총장이 되었다. 현재 11개 수족에 1,318명의 회원이 있다(1983년 교황청연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