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의미로는 19세기 후반에 일어난 신칸트주의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보다 엄밀하게는 칸트의 비판철학을 계승한 프랑스의 칸트주의만을 일컫는다. 독일의 신칸트주의와 비슷하지만 콩트의 실증주의를 계승하여 칸트보다 더 철저한 반(反) 형이상학적인 현상주의(現象主義, phenomenisme)와 상대주의적 입장을 고수하였다. 그 대표자인 르누비에(C. Renouvier)는 철학의 유일한 임무를 여러 현상간의 법칙을 파악하는 것이라 하고 이를 위해선 인식의 보편적인 법칙과 그 한계를 명백히 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따라서 신비판주의에 있어서 모든 범주는 관계의 범주로 환원되고 칸트에게 남아 있던 본체(本體)의 세계는 철저히 부정되었다. 또 칸트에게서는 분리되었던 순수이성의 주체와 실천이성의 주체가 르누비에에 있어서는 인격이라는 궁극적인 주체에 의해 통일되었다. 신비판주의는 당시의 전체주의적 사회관과 과학적 결정론에 반대, 자유로운 인격의 의의를 강조하였다. 대표자로는 르누비에 외에 그의 제자 피용(F. Pillon)과 개연론으로 초 이성주의 사상을 주장한 쿠르노(A.A. Cournot)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