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4,16-30:나자렛에서 희년을 선포하시다

 

어떤 예언자도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거부하는 사람들

1. 말씀읽기:루카4,16-30

나자렛에서 희년을 선포하시다 (마태 13,54-58 ; 마르 6,1-6)

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17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

20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22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23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 할 것이다.”

24 그리고 계속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26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말씀연구

혹시 굴러온 복을 걷어 찬 적은 없으십니까? 여기 복을 걷어차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고향 사람들. 그들은 예수님을 거부합니다. 자신들이 알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것. 별것 아니라는 것을 인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상대방에 대해서 다 알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사실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입견을 가지고 상대방을 대하지 말고, 첫인상을 가지고 상대방을 대하지 말고 그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그를 대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야 하겠습니다.



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안식일 집회는 기도와 성경 낭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율법서(모세오경)는 언제나 낭독되었으나 예언서의 구절을 선택하는 일은 낭독자의 소관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남자들은 누구나 낭독할 권리가 있었고, 해설을 덧붙이거나 다른 훈계의 말을 할 권리도 있었습니다. 이 권리를 행사하기 원한다는 표시로 예수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셨습니다. 이것이 성경 낭독을 포함한 그 의식이 시작되는 방식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의례 규정을 완벽하게 지키셨습니다.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경건하고 공손하게 다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장식품이 아닙니다. 먼지 쌓인 장식품이 아니라는 것을 꼭 기억합시다.



17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예수님께서 받아 드신 성경 구절은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대목을 펴신 것은 우연히 아니라 성령의 감도에 의해서였습니다. 가끔은 나도 기도하다보면 미리 앞당겨서 보기도 합니다. 누가 저녁에 면담을 신청했을 때 아침에 읽은 성경 말씀이 그 사람이 하고자 하는 내용인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기쁨에 넘쳐서 그와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도유되셨고 성령의 능력으로 행동하셨습니다. 이사야는 하느님의 나라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좋아하는 예언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명을 이사야의 말을 빌어서 묘사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서 61장 1-2절을 인용한 것입니다(1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 하느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2 주님의 은혜의 해, 우리 하느님의 응보의 날을 선포하고 슬퍼하는 이들을 모두 위로하게 하셨다.).

 다만 “찢긴 마음을 싸매 주고”가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이사야58,6)로 대체되었습니다. 이렇게 대체됨으로써 전체 내용이 분명하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은 이들을 해방시켜 내 보내시는데,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그 모든 사명들은 하느님께로부터 위임받은 것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 시대에 갈릴래아는 유대인들이 지독히 멸시하던 곳이었습니다. 그곳은 과거로부터 힘이 강한 여러 나라들로부터 지배를 받았고, 예수님 시대에도 로마로부터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갈릴래아는 여러 민족이 혼합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지역의 주민이 순수한 유대 민족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갈릴래아 사람들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갈릴래아 사람들은 종교적, 정치적 중심지인 예루살렘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지역에 살고 있었기에 이방인들의 영향에 대해서 조심성이 덜했기 때문에 유대 전통에 무관심한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예루살렘 사람들은 갈릴래아 사람들을 조심스럽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지요.



 또한 갈릴래아 지역은 비옥한 땅이어서 농업 소출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로마 정부의 무자비한 세금 징수와 팔레스타인에서 부과된 종교세(11조)는 비옥한 지역 농민들도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소농 지주들은 무거운 세금을 감당할 수 없어 땅을 포기하게 되고, 소작인으로, 그 다음에는 날품팔이로 몰락했습니다. 갈릴래아 주민 대부분의 생계비는 연 200데나리온 정도였다고 합니다. 한 데나리온은 일꾼의 하루 품삯이니 얼마나 열악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율법학자들은 그들을 시골뜨기들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멸시의 대명사였습니다. 또 바리사이들은 그들을 저주받은 자들로 보았는데, 그들이 율법을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

나자렛 사람들이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가난한 사람,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이 전해지고, 그 대상이 바로 자신들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들은 말씀 안에서 기뻐했을 것입니다. “바로 나에게 해방을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명을 완수하셨습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 스승님이시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6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마태11,5-6).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당신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셨고, 성경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께 자비를 청해서 외면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청하는 이들 모두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시고, 당신의 말씀과 행적으로 은총을 쏟아 부으셨습니다.



20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이사야서의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십니다. 그리고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성경 낭독 후에는 가르침이 뒤따랐습니다.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합니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예수님께서는 한 문장으로 그 가르침을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예수님께서는 구원의 때를 선포하시고 그 때가 도래하였음을 알리십니다. 억압받고 절망 속에서 살아야 했던 갈릴래아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 진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저주받은 족속이라고 불리지 않을 것이며,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22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은 하느님과 인간의 총애를 많이 받으셨습니다(2,52). 청중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하느님의 은혜로우심을 표현하고 있으며 그 말씀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에 모두들 예수님을 칭찬하였습니다. “하느님의 구원의 은총이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습니다.”(티토서2,11). “하느님께서는 그분과 함께 계셨습니다.”(사도10,38). 이러한 것은 예수님을 알고 있던 사람들이 직접 체험한 첫인상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인성이 걸림돌이었습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예수님의 말씀은 도전이었고 문제 거리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메시지는 환영하였지만 그 메시지를 가져온 구세주는 배척하였습니다. 나자렛 사람들의 눈에 예수님은 그들과 다름없었고, 또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구세주라는 것을 증명할 만한 아무런 증거도 그들에게 제시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가끔 공직에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아무개, 그 친구……,”등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높여 주지 않고 깎아 내린다고 해서 내가 올라가는 것은 아닙니다. 한 동네에서 자랐고, 그를 잘 알고 있다하더라도 그가 행하는 일들을 존중해주고, 그 일을 하는 그를 존중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더러는 마치 자신이 그 보다 더 잘났고, 그를 모두 알고 있고, 그를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기도 합니다. 이 나자렛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23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고향 사람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설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도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여러분에게 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것을 배척하고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스스로 합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니, 이제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돌아섭니다.” (사도13,46).



 사람들은 예수님께 뭔가를 원했습니다. 그들이 믿을 수 있도록 기적을 원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동네 사람들이기에 더욱 믿어야 하지만, 그들이 예수님을 알고 있다는 잘못된 교만은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예언자라면, 약속된 구세주시라면 그들이 알아 볼 수 있도록 표징을 원합니다. 사실 그들은 카파르나움에서 예수님의 활동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없습니다.



24 그리고 계속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예수님께서는 고향 사람들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그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예언자를 예언자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예언자가 받을 상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 안에서,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습니다. 힘들어서가 아니라 내 마음 안에 “교만”이 깊이 자리하기 때문입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되는데, 그것을 안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만이 깊이 뿌리 내렸기 때문입니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아합 왕 시절 아합왕은 어떤 임금보다도 더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몇 해 동안 이슬도 비도 내리지 않게 하셨던 것입니다.



26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하느님께서는 엘리야를 통하여 가뭄을 예언하게 하고, 시돈에 있는 사렙타로 가서 머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그곳에 있는 한 과부에게 명령하여 너에게 먹을 것을 주도록 해 놓았다.”(1열왕17,9)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엘리야가 사렙타로 갔더니 사렙타의 과부는 굶어 죽기 직전이었습니다. 엘리야는 사렙타의 과부에게 물과 빵 한 조각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마지막 남은 밀가루 한 줌을 가지고 아들과 함께 먹고 죽으려고 하던 참이었습니다. 엘리야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당신 말대로 음식을 만드시오. 그러나 먼저 나를 위해 작은 빵 과자 하나를 만들어 내오고, 그런 다음 당신과 당신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드시오.”라고 말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 주님이 땅에 비를 다시 내리는 날까지, 밀가루 단지는 비지 않고, 기름병은 마르지 않을 것이다.” 사렙타의 과부는 이 말씀을 믿고 그대로 합니다. 그리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았던 것입니다. 믿음은 증거를 요구하면 안 됩니다.



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나아만은 시리아 사람으로서 아람 임금의 군대 장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나병환자였습니다. 그가 어느 날,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를 사로잡아 왔는데 나아만의 나병을 보고 “주인 어르신께서 사마리아에 계시는 예언자를 만나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분이라면 주인님의 나병을 고쳐 주실 텐데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아만은 아람 임금에게 그 말을 했고, 아람 임금은 이스라엘 임금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 보내었습니다. “그의 나병을 고쳐 주시오.”나아만은 은 열 탈렌트와 금 육천 세켈과 예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편지를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임금은 당황했고, 아람 임금이 시비를 거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엘리사는 이스라엘 임금이 옷을 찢었다는 소리를 듣고 임금에게 사람을 보내어 나아만을 보내 달라고  합니다.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왔을 때 엘리사는 심부름꾼을 시켜 “요르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십시오. 그러면  새살이 돋아 깨끗해질 것입니다.”라고 전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나아만은 화가 났습니다. 얼굴도 보여주지 않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상처에 손을 얹거나 약을 발라 주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을 내며 발길을 돌리려고 할 때 부하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이 예언자가 어려운 일을 시켰다면  하지 않으셨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아버님께 몸을 씻기만 하면 깨끗이 낫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리하여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이 일러준 대로 요르단 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갔고, 어린아이 살처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졌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예언자는 자신의 임의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예언자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파견하신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경우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기적이 이웃 주민들에게가 아니라 낯선 이들과 이방인들에게 베풀어지도록 하셨습니다. 나자렛 사람들이 구세주의 고향 사람들이었고 같은 혈통을 지닌 친척들이었다는 것이 구원의 정당한 사유가 되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온 이스라엘은 그들 가운데에서 메시아가 나셨다는 이유로 구원에 대한 권리 주장을 내세울 수는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다스림을 선포하셨고 또 그 다스림을 확립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기쁨이 되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푸십니다. 구원은 은총입니다.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사실 그대로이지만 그들에게는 모욕이 됩니다. 자신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면 그것은 모욕이 아니라 정확한 지적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롭게 나아지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화를 냅니다.

  

 선택받은 유대인들이 복을 받지 않고, 그들이 개나 돼지처럼 여기는 이방인들이 구원받은 이야기를 듣고 화가 났습니다. 즉 조상들이 하느님께 불충해서 복을 받지 못한 것처럼, 자신들도 믿음이 없고, 하느님께  불충하다는 말로 들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 화가 잔뜩 났던 것입니다.



 친한 친구에게 “내가 너랑 친해서 하는 말인데, 넌 이것을 좀 고쳤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면 대부분은 싫어한다고 합니다. 듣기 싫은 이야기는 듣지 않으려고 하는 것. 그것은 옹졸한 마음을 가진 사람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그러했듯이 사도들에게도 화를 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교회에 대해, 그리고 하느님의 메시지를 설교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중에 바로 내가 끼어 있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예언자임을 자처하는 사람은 반드시 표징과 놀라운 일들로 자신이 예언자임을 증명해야 합니다(신명 13,2-3).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불경한 자로 단죄하고 돌로 쳐 죽이려 하였습니다.



 불경한 자를 처벌하는 첫 조치는 핵심 증인이 그 죄인을 벼랑에서 밀어 떨어뜨리는 일이었습니다. 모인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을 심판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단죄하고 즉시 형에 처하려고 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자기 고향 사람들에게 대한 예수님의 사명이 좌절되었음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고향 사람들에게 불경한 자로 낙인찍히고 배척당하여 죽음에 직면하게 되셨습니다.



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기적도 행하지 않으셨지만 예수님께 손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의 때가 아직 오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은 하느님께 달려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에 처해지셨을 때조차 그것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의 예수님의 부활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신앙인들은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니 걱정할 것 없습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이 두려움을 극복하고 예수님께서 바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구세주이심을 고백한 것처럼, 신앙인들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당하게 내 일을 해야 합니다.



3.나눔 및 묵상

1.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사람의 모습을 잘못 알고 있었던 적은 없었습니까? 그리고 나의 모습을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럴 경우 어떻게 하십니까?





2.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신앙인들을 박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앙인들에게 상처받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을 떠나게 되는 사람들도 생기게 됩니다. 마치 나자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혹시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이들을 박해한 적이나, 박해를 당한 적은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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