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식 [한] 申仁植

신인식(1892~1968). 신부. 세례명은 바오로. 1892년 12월 6일 충남 서산군 팔봉면 금학리(忠南 瑞山郡 八峰面 金鶴里)에서 교우가정의 3남 2녀 중 차남(次男)으로 출생. 어려서 가족과 함께 충남 당진(唐津)의 합덕(合德)으로 이주, 그 곳에서 성장하여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입학, 사제수업을 마친 뒤 1920년 9월 18일 드브레(Devred, 兪世俊) 주교의 주례로 종현성당(鐘峴聖堂, 지금의 명동대성당)에서 사제로 서품(敍品). 종현본당 보좌, 1921년 약현 본당(지금의 중림동본당) 보좌를 거쳐 1927년 명동 성가기숙사(聖家寄宿舍) 사감으로 10년을 봉직하였다. 명동 성가기숙사 시절 <가톨릭청년>지에 유물사관唯物史觀)을 비판하는 글을 비롯하여 많은 글들을 발표하였고, 1934년에는 ‘조선 5교구 가톨릭운동’ 서울교구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그 뒤 1937년 황해도 신천(信川)본당 주임 신부, 1938년 혜화동 소신학교장 1945년 미아동본당 창설 신부 등을 역임하면서 1944년 서울 여의전(女醫專), l946년 서울대학교, 1947년 서울대 대학원에서 강의하였고 또한 일제말기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에서 편찬에 착수한 ≪우리말 큰사전≫의 천주교관계 항목을 집필하기도 하였다. 1946년 4월 약현성당 주임신부로 전임되어서는 사회사업과 교육사업에 관심을 갖고 1946년 잠실에 고아들을 모아 ‘성심원’(聖心園)을 개설하는 한편 1949년 성심학관(聖心學館), 1954년 성 요셉 간호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1954년 11월 본당사목을 사임하고 인천(仁川) 성 바오로 수녀회 지도신부로 있다가 1955년 대방동본당 주임으로 다시 사목을 시작, 1961년 약현 본당 주임신부, 1963년 명동본당 주임신부를 역임한 뒤 1964년 은퇴, 가르멜 수녀회의 지도신부직을 맡았다. 1967년 건강이 악화되어 가르멜 수녀회 지도신부직을 사임하고 주교관과 명동 성모병원에서 병상 생활을 하다가 1년 뒤인 1968년 8월 12일, 74세로 선종, 용산 성직자묘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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