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한] 神學 [라] theologia [영] theology

1. 단어의 뜻 : 우리말로 신학이라고 번역하는 theologia는 성서에는 없는 단어이다. 고대 희랍인들이 그들의 신들에 대한 이야기[Platon], 또는 만물의 존재를 최고의 존재로서 설명하는 철학적 우주론[Aristoteles]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어원(語源)상으로 ‘신’(theos)에 대한 ‘논’(logos)이라는 이 말을 초대 교회의 교부들은 희랍 사상과 혼동을 염려하여 사용하지 않았으나 오리제네스(Origenes)가 처음으로 하느님께 대한 인식이라는 뜻으로 이 단어를 사용하였고, 동방교부들이 그를 따랐다. 서방교회에서는 오랫동안 이 단어가 유행하지 않았고 아우구스티노도 ‘그리스도교 교리'(doctrina christiana)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뜻으로 이 말이 서방신학에 도입된 것은 12세기의 아벨라르도(Abelardus)이고 13세기에 여러 대학에 신학부가 설치되면서 이 단어는 보편화되었다. 그래도 토마스는 이 말보다 ‘거룩한 교리'(sacra doctrina)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하였다. 현대에 있어서 신학은 하느님이 계시하신 진리를 신앙과 이성으로 파악하려는 학문적 노력을 지칭하는 말이다.

2. 신학의 기원 : 신학은 하느님이 당신의 뜻을 인간에게 계시하셨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그 계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을 인간의 생각과 말과 상징과 사건들을 통하여 역사 안에 나타나셨고 인간은 이 계시를 신앙으로 수락하여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인격적 관계를 성립시켰다. 그러나 인간은 신앙으로 수용한 계시가 신비일지라도 그 내용을 알고자 하는 지성적 관심을 항상 가지고 있어서 한편으로는 믿으면서도 인간의 지력의 힘으로 더 정확하게 더 많이 더 충만하게 파악하려고 하는데 이러한 지성적 탐구를 신학이라고 말한다. 고대 유다이즘에는 이러한 신학적 탐구의 흔적이 없었지만, 그리스도교는 처음부터 신학적 노력을 기울였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교가 만백성의 보편적 종교로 자처했기 때문에 미신자들에게 그리스도교의 믿음을 설명해줄 필요가 있었고, 반대자들의 공격에 대하여 스스로의 정당성을 변화하기 위하여서도 반대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해설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선교적 호교적 탐구가 축적되어 3세기경에 오리제네스, 테르툴리아노 등이 그리스도교의 체계적 논술을 시도하였고, 4∼5세기에서는 소위 대교부들이 배출되었으며, 그 뒤 오늘날까지 신학은 그리스도교적 현상의 한 가지로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신앙의 출발점은 근원적으로 하느님의 계시에 있고, 방법적으로는 신앙의 빛을 받은 인간 지성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신학은 신앙과 이성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3. 신학의 대상 : 신학이 취급하는 문제는 게시된 사물 전부이지만, 그 많은 사물 안에서 신학이 찾는 진정한 대상은 하느님 자신이고, 다른 사물들은 하느님과의 관련 때문에 신학의 대상이 된다. 철학에서도 신을 논하지만, 모든 존재의 원인으로서의 존재의 본체나 속성을 이성으로서 추구하지만, 신학에서는 신성으로서의 하느님(Deitas), 즉 창조주시요 계시자이시며 강생 구속하시는 하느님, 우리 구원의 경륜을 펴시는 위격적(位格的) 하느님을 찾는다. 물론, 하느님의 자기 계시의 초점이 그리스도이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앎으로써 하느님을 알 수 있으니, 신학의 주체는 하느님 자신이요 방법에 있어서는 그리스도 중심적이다.

신학의 구성 원리는 인간 이성에 자명(自明)한 자연적 진리가 아니고, 신앙으로 받아들인 초자연적 진리이기 때문에 진리의 근원이신 하느님의 전지하신 인식에 신앙으로 참여하여 감히 하느님의 계시를 이성의 능력한도 안에서 이해하고 정리하며 거기서 얻은 결론들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려고 한다. 그래서 신학은 신앙으로서 수용한 계시를 신앙의 지도를 받는 이성으로서 음미하는 노력이며, 철학을 도구로 사용하지만 이성의 빛만으로 종교를 연구하는 종교철학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4. 신학의 소재(素材) : 하느님은 당신의 계시를 모든 인간의 정신에 이념으로 박아 주시지 않으시고 인간 역사 안에서 특정 인물과 사건을 통하여 계시하시고, 이 계시를 후대에 전할 공동체를 마련하셨으니 우리는 계시의 출발에서 우리에게까지 전달되는 전 과정을 구세사(救世史)라 하고, 이 구세사는 우리에게 ‘거룩한 전통’[聖傳]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신학 공부를 한다는 것은 이 전통을 연구한다는 말이다.

① 성경 : 이 거룩한 전통의 일부는 성령의 영감을 받은 저자들이 서책에 수록하였는데 이 서책들을 성경이라고 한다. 성경은 구세사의 주역으로 간선된 이스라엘 백성과 신약의 교회 안에서 저술 편찬된 하느님의 말씀과 행적의 보관 창고이며 이스라엘 백성과 원시 교회가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표현하고 이해하고 실천하는지 증언하는 귀중한 증빙문헌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이 저술되던 당시의 인간들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니고 모든 인간들에게 구원의 경륜으로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단순한 문헌학이나 역사학이나 주석학의 범주를 넘는 살아 있는 말씀이다. 따라서 신학자는 성서를 훈고학적(訓詁學的)으로만 분석 연구하지 않고 교회의 성전 안에서 성전에 의하여 음미하고 이해하여, 하느님의 말씀의 현재적 실존적 의미를 규명해야 한다.

② 교도권 : 계시를 전달하는 주체는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요, 교회의 신앙을 지도하는 책임은 교도권에 맡겨진 것이다. 교도권은 계시를 경건하게 듣고 거룩하게 보존하고 성실하게 진술하는 임무를 맡고 있으므로 교도권이 시대와 장소에 따라 계시를 어떻게 해설하고 가르치는지 탐구하는 일은 성서 연구 다음으로 중요하다. 특히 신앙과 도덕에 관하여 전체 교회에 신앙을 고백하는 세계 공의회의 결의와, 교황이 교좌에서(ex cathedra) 선언한 것은 특히 중요한 신학의 소재이다.

③ 전례 : 전례는 교회가 믿는 바를 경신례와 성사 거행을 통하여 실천하는 주체적 신앙 고백이며, 성경과 성전을 행동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례의 경문들은 성서 귀절과 교리 설명 문구들로 편성되어 있고 전례의 예식은 신앙을 표현하는 상징과 동작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전례 전체가 교회의 믿음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전례는 신학의 귀중한 소재이다.

④ 교부 : 사도시대에 가까운 고대 교회의 저술가로서 뛰어난 성덕과 정통신앙에 충실한 학설을 남긴 교부들의 저서도 귀중한 소재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교의 기초교리(성삼론, 그리스도론, 구원론)가 체계화 되고, 전례와 교회생활에 기틀이 마련되던 고대 교회의 증인들이고, 또 그들의 대다수가 그 시대의 교도권에 참여하고 있던 분들인 만큼, 어떤 문제에 대한 많은 교부들의 일치된 해설은 신학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⑤ 교회사의 흐름 : 교회사에 등장한 중요한 사건이나,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실시된 제도나 중요한 신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도 신학의 소재가 된다. 이런 것들을 통하여 성령께서 교회를 인도하시고 신자들의 공통된 신앙감(信仰感)이 형성되기 때문에 넓은 의미에서 계시의 해석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단, 박해, 교회법, 수도회, 성인행적, 지방교회회의 등이 신학연구에 유익한 재료가 될 수 있다.

위에 말한 여러 가지 소재들을 연구 정리하는 것을 실증신학(實證神學, theologia positiva)이라고 한다.

5. 신학적 사변(思辨) : 실증신학이 제공하는 연구 결과는 하느님 계시의 표현양상을 확인하는 데 의미가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학문으로서의 신학이 성립되지 않는다. 인간이 계시의 내용을 인간적 인식의 법칙(개념 · 판단 · 추리)에 맞도록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고 체계적으로 진술할 수 있어야 신학이 성립된다. 그래서 실증신학의 연구 결과에 대한 신학적 사유 즉 사변신학(思辨神學, theologia speculativa)이 필요하다.

먼저 계시내용을 설명하기 전에 계시와 신앙의 전제 조건이 되는 신의 존재와 속성과 인간 영성의 본질에 관한 학문적 통찰이 선행되고, 역사학과 철학을 원용하여 계시의 가능성과 역사성을 논증하고, 그리스도교가 건전한 이성에 모순되지 않고, 인간 본성의 요청에 부응한다는 것을 밝힐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계시외적(外的) 사항을 연구하여 신학의 성립가능성을 밝히는 것을 기초신학(基礎神學, theologia fundamentalis)이라 하고 반대자들의 공격을 반박하는 의미도 있기에 호교론(護敎論)이라고도 한다.

기초신학에 이어서 계시내용을 이해하려는 사변이 계속된다. 여기에는 당연히 철학적 인식론에 의한 논리적 방법이 사용된다. 계시된 사항을 좀 더 학술적으로 세련된 명확한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하고, 계시된 사항을 인간의 현실적 경험과 비교하여 유추적(類推的)으로 해설하기도 하며, 이렇게 이해된 명제(命題)들을 논리적 순서나 인과관게에 의하여 체계적으로 배열하거나 마침내 이미 확인된 진리들에서 논리적으로 도출되는 결론을 발견하는 것들이 신학적 사변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학적 사변은 계시를 철학으로써만 관찰하는 종교철학이 아니므로 인간적 논리를 최후 근거로 하지 않는다. 어떤 계시 진리에서 논리적으로 도출된 결론이라도 다른 데서 명시적(明示的)으로 계시된 진리와 모순되면 이 논리적 결론은 포기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변적 신학을 조직신학(組織神學, theologia systematica)이라고 한다. 그런데 16세기부터 조직신학의 내용 중에서 인간의 윤리, 도덕에 관한 부문이 별도로 취급되면서 윤리신학(倫理神學, theologia maralis)이라는 분과가 성립되면서 주로 믿을 교리에 관한 내용도 따로 취급되어서 교의신학(敎義神學, theologia dogmatica)이라는 분과가 성립되었다.

우리가 반드시 신앙해야 되는 진리는 교회가 계시해서 도출한 신조(信條, dogma)들이다. 그런데 신학은 우리가 믿는 교리를 이성으로 설명하는 학문이므로 신학자의 교육성향, 문화적 배경, 시대적 영향, 학파의 인맥 등에 따라서 같은 대상에 대한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신앙을 설명하는 방법이나 이론 체계가 서로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신조에 대한 신앙의 일치가 저해되지 않는 한, 이러한 신학의 다원화 현상은 신학의 발전을 위하여 좋은 현상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신학은 많은 분과와 학파를 가질 수 있지만, 계시에 대한 신앙적이고 이성적 이해라는 점에서 고도의 통일성을 가진 학문이며, 하느님의 신비를 관조(contemplatio)한다는 의미에서 대단히 사변적이지만, 그 신비는 인간의 실존적 참여를 요구한다는 점에서는 대단히 실천적인 학문이다. 그래서 가톨릭 신학계에서는 신학이란 단순한 지식(scientia)이 아니고 차원 높은 지혜(sapientia)라고 한다. (鄭夏權)

[참고문헌] M.D. Chenu, La theologie est-elle une science?, Fayard, Paris 1957 / Y. Congar, La foi et la theologie, Desclee, Tournai 1962 / E. Schillebeeckx, Revelation et theologie, Bruxelles 1965 / H. Fries, Theologie, in Encyclopedie de la foi, t. 4, pp.310-322.

이 글은 카테고리: 신학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