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원] Argentina

면적 276만 6,889㎢에 인구 2,916만명(1982년 추계)의 남아메리카의 독립 공화국, 북쪽으로 볼리비아, 북동으로 파라과이, 동으로 브라질, 우루과이와 대서양, 서로 칠레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마젤란의 세계 일주 탐험 때(1519~1520) 가톨릭 사제 몇 사람이 함께 와서, 십자가를 계시하고 미사를 올렸고, 원주민도 호기심에 수명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진다. 1536년 2월 멘도사(Pedro de Mondoza)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하여 세 곳에 교회를 세웠다.

1547년 교황 바오로 3세가 오늘날의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를 포함하는 리오(Rio de la Plcta) 교구를 창설하였다.

아르헨티나에서의 선교 활동은 주로 프란치스코회와 예수회의 활동에 힘입은 바 크다. 16세기의 예수회의 활동은 1767년 예수회가 쫓겨남으로써 끝나고 대신 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회, 메르세다리언회가 선교 활동을 하였다.

1853년부터 1880년 사이 아르헨티나의 가톨릭 교세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 이유는 지식인들이 이반하였기 때문인데, 지식인들은 기성 교회가 타락하였다고 생각하였고, 따라서 프리메이슨 운동에 많이 경도(傾倒)되었다. 여기에 대항하여 에스트라다(jose Manuel Estrada)가 대단히 전투적인 가톨릭인 Union Catolica를 조직하고, 일간지 을 발간하여 가톨릭 정신을 고취하였다.

1902년 아르헨티나 의회에서 이혼법을 논의하였을 때 투쿠만(Tucuman) 출신의 젊은 입법의원 파딜라(Ernesto E. Padilla)가 이를 부결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1902년의 이혼법 통과 저지에 승리하자 초기의 박해와 점점 세력을 얻고 있었던 좌익화 운동에 흔들리고 있던 가톨릭의 일치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1982년 현재 아르헨티나는 2,707만명의 가톨릭 신자에 63개의 교구, 2,210개의 본당을 거느리는 대 가톨릭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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