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 중에서 제일 광대한 대륙으로 면적 4억 440만 5,618㎢, 인구 약 27억 3,217만명(1982년 추계)이다. 아시아는 높은 산맥이 많아 기후와 문화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다. 아시아의 29분의 3은 북극해 지역에, 20분의 1은 열대에 4분의 3은 온대성 기후에 속한다. 인종으로는 퉁그스족, 티베트-지나족, 인도-이란족, 몽고족이 3분의 2를 차지한다. 한자(漢字)와 유교사상을 근간(根幹)으로 하는 중국문화가 중국 · 일본 · 한국 · 월남의 문화 형성에 주요한 역할을 하였고, 티베트 · 몽고 · 캄보디아 · 버마의 문화 형성에도 기여하였다. 그 다음으로 아시아지역의 문화 형성에 기여한 문화는 불교문화를 중심으로 한 인도문화였다.
이 지역에서의 그리스도교 전파는 이 대륙이 너무 광대하고, 쉽게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며, 많은 민족이 고도의 독자적인 문화를 향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 많았다. 12사도 중에서 성 토마스(St. Thomas)가 중국에 가톨릭 신앙을 전파했다는 주장은 오늘날 근거가 없는 것으로 부인되고 있으며, 그가 인도에 있었다는 사실도 역사적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15세기에 이르기까지 아시아지역에 대한 포교의 물결은 간헐적으로 있었으나 그나마도 14세기의 처참했던 흑사병(1346~1353년)의 창궐로 2500만 명의 유럽인이 사망하고 2,300만 명의 아시아인이 떼죽음을 당하여 그 때까지 겨우 명맥을 이어오던 아시아지역의 가톨릭 세력이 거의 전멸해 버리고 말았다.
지리상의 발견을 계기로 하여 아시아에 대한 가톨릭 포교가 본격화 되었다. 초기의 가톨릭 포교에는 포르투갈 · 스페인, 17-18세기에는 네덜란드와 파리외방전교회(M.E.P.) 소속 선교사들이 많았다. 포르투갈 프라치스코회에서 세일론과 말레이 반도에 복음을 전파한 것은 1511년이었고, 이어 1533년에는 아프리카 전부와 극동(極東)을 포함하는 교구를 고아(Goa)에 세웠으며(1533년), 프란치스코 사베리오(Francis Xavier)가 예수회와 함께 1544년 인도에 들어갔다. 사베리오는 그 뒤 일본을 거쳐(1549년) 중국에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상륙 직전에 죽고, 중국에 대한 포교는 마테오 리치(Matteo Ricci)를 중심으로 한 예수회의 열성으로 크게 발흥하였으나, 스페인 출신의 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회 소속의 선교사들이 예수회의 포교 방식에 크게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유명한 중국의 의례 논쟁을 야기하게 되었다.
1622년 교황청은 포교성성(布敎聖省, Congregation for the Propagation of the Faith)을 세워 포르투갈의 관할 하에 있지 않은 교구는 지역 성직자에게 위임하도록 하였다. 파리 외방전교회의 활동은 1663년에 시작되어 그 이듬해에 로마의 인준을 얻었다. 18-19세기에 들어와서 아시아의 지역 국가에서는 가톨릭 신앙에 대한 전통사상의 완강한 저항이 일어나, 이를 두둔하는 정치권력에 의한 무자비한 박해가 가해지기도 하였고, 구미 선진국가의 아시아지역 국가에 대한 식민지화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본토인에게 재치권(裁治權)을 부여하는 여러 조치가 로마교황청으로부터 나왔으니, 그것은 교황 베네딕토 15세에 의한 (1919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한 (1926년) 칙령 등이었다.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2차 대전의 종식과 더불어 독립국으로서 지위를 얻었으나 중국 본토 · 월남 · 베트남 · 북한 등이 공산화되어 신앙의 자유를 잃고 교회의 종소리는 침묵하고 있다. 이 지역의 가톨릭 신자는 1982년 현재 6,698만 9,000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