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본당 [한] 安城本堂

주보로 ‘착한 의견의 모친’을 모시고 있는 이 본당은 1901년 아산 공세리(牙山 貢稅里) 본당에서 분할되어 창설되었다. 초대 신부로 부임한 공베르(A. Gombert, 孔安國) 신부는 통진군수를 지낸 백(白)씨의 집을 사서 임시성당으로 삼았다. 본당 창설 당시의 관할지역은 안성 · 평택 · 천안 등지로 16개소의 공소로 거느리고 있었다. 공베르 신부를 도와 본당 창설에 주동역할을 한 평신도는 권성오(權聖五, 요한), 조성기(趙聖基, 아우구스티노), 이중빈(李重彬, 요한) 등이었다. 한국 민족을 사랑한 공베르 신부는 구한말에 벌떼처럼 일어난 의병과 3.1운동 때 만세시위에 가담한 군중을 성당에 수용하여 보호하였다. 그는 1909년 1월 안법학교(安法學校)를 설립하고, 운영비를 자비로 댔다. 1912년에는 안법학교 여자부를 신설하고, 샤르트르 성 바오로회 수녀 2명을 초청하여 여학생들을 가르치게 하였다.

1922년에는 박호연(朴浩淵, 야고보), 윤관병(尹觀炳, 베드로), 김중목(마르코) 등 여러 교우들의 정성을 모아 로마네스크식의 벽돌성당을 신축하여, 8월 15일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1924년 수녀원을 신축하고, 1927년에는 교세의 확장으로 평택본당을 분할 독립시켰다. 1932년 공베르 신부가 재임 31년 만에 전임되고, 뤼카(F. Lucas, 陵嘉思) 신부가 부임하여 이듬해 안법학교의 새 교실을 지었다. 1934년 뤼카 신부의 별세로 이순성(李順成, 안드레아) 신부가 첫 한국인 본당 신부로 부임하여 예수성심회를 발족시키고, 1936년에는 이복영(李福永, 요셉) 신부가 와서 안법학교를 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로 승격시켰다. 1937년의 본당 총교세는 2,277명이었다. 1942년에 부임한 이철연(李哲淵, 프란치스코) 신부의 재임기간은 일제 말기였기 때문에 교회활동에 어려움이 많았으나 일제의 감시를 피하여 청년들을 규합하고, 성가대의 이름으로 청년회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3년에는 조인환(曺仁煥, 베드로) 신부가 부임하여 본당 신자총회를 개최하고 일원을 선출하여 본당의 경제적인 자립을 꾀하였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김제근(金濟根, 토마스) 신부가 부임한 뒤, 1947년에는 안법국민학교를 초급중학교로 승격시켰다. 1948년 임세빈(林世彬, 요셉) 신부가 부임한 뒤 교구방침에 의해 본당 자치위원회가 구성되었다. 6.25동란 중에는 성당이 공산군에게 강점당하고, 초대본당신부였던 공베르 신부는 서울에서 납북되었다.

1951년 8월 임응승(林應承, 요한) 신부의 재임 중에 안법고등학교가 개교되고, 1953년 임세빈 신부가 다시 주임으로 부임한 뒤 1954년 안법중고등학교를 2층 248평의 벽돌 교사로 지었다. 1959년 갈전리본당이 여기에서 분리되어 독립하고, 1963년 수원교구로 편입되었으며, 교세의 확장으로 1970년 7월에는 대천본당도 여기에서 분리 독립되었는데, 그로부터 이 본당은 ‘구포동본당’으로 부르게 되었다. 1975년에는 수녀원을 새로 지어 이전하고, 1981년 9월 죽산성당이 신축되어 ‘준본당’으로 분리되었다. 1981년 12월 본당 구내에 안법신용협동조합이 창설되었다. 신자총수는 3,389명이고, 30개소의 공소를 관할하고 있다. 이 본당을 맡아 왔던 주임신부는 다음과 같다. 초대 공베르, 2대 뤼카, 3대 이순성, 4대 이복영, 5대 이희연, 6대 조인환, 7대 김제근, 8대 임세빈, 9대 임응승, 10대 임세빈(재부임), 11대 박성춘, 12대 정욱진, 13대 정덕진, 14대 정욱진(재부임), 15대 강주희, 16대 신원식, 17대 정원진, 18대 이종철, 19대 손태섭, 20대 김병렬, 21대 이정운 신부이고, 현 주임은 백명기 신부가 22대로 재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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