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국교회 및 일반적으로 성공회(聖公會) 안의 고교회주의(高敎會主義)를 가리키는 말. 1838년 이래로 이 명칭이 일반에 쓰이게 되었다. 18세기 이래의 성공회 복음주의가 개인의 구원을 일방적으로 강조한 것과 자유주의사상의 영향으로 인해 19세기 초두의 영국 국교회에서는 교회 관념이 희박해져서 교회를 경시하는 경향이 생겼다. 이 경향에 대한 고교회주의 측에서의 반동으로 이러난 것이 옥스퍼드 운동(1833년)이고, 그 신학적 입장이 앵글로 가톨리시즘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 사상, 주장의 요점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① 교회의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신적(神的)인 권위에 대해 국가도 침범하지 말아야 하며, 개인은 그것에 순종해야 한다. ② 교회는 본래적으로 유일하게 성스러운 가톨릭 교회이다. 초대 5세기 간의 교회는 그런 의미에서 이상적 형태를 이루고 있었으며, 영국 국교회는 그 가톨릭 교회의 올바른 사도 전승의 성직 · 성사 · 교의 · 실천을 전달하는 하나의 지체(枝體)이다(이른바 分枝論, branch theory). ③ 그러나 로마교회와 동방교회는 모두 진정한 가톨릭 교회의 가지[枝]이므로 올바른 교류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④ 예배에서의 의식적 요소의 존중, 기도서를 올바르게 사용함으로써 공도(公禱)의 질서 회복, 예배음악 · 건축장비의 면에서도 고대의 것의 존중 등으로 의식주의(儀式主義)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단순한 외형의 존중은 본래의 취지가 아니다. ⑤ 학구면에 있어서도 옥스퍼드 운동의 시대(1833~1845년)로부터 수육(受肉)신앙에 관한 연구서 ≪Lux Mundi≫(1889)를 거쳐서 특히 근대비평학에 대해 진보적인 태도를 취한 ≪Essays Catholic and Critical≫(1926)로 이어져, 현대 예배학의 면에서도 공헌이 크고, 교부(敎父) 연구면에서도 문헌적인 업적을 올려 영국 국교회의 학문적 수준을 고양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교황 레오 13세는 1895년 “신앙의 일치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희구하는 영국인”에게 친서를 보냈고, 국교회측도 이것을 호의적으로 맞이했으며, 그 결과 고교회측의 핼리팩스(C.L.W. Halifax)경은 교회합동에 관해 메르셰(D.J. Mercier) 추기경과 사적 교섭을 벌여 말린(Malines) 회담이 개최되기까지 했으나 메르셰의 사망(1926년)으로 중단되었다. 양교회 합동을 위한 단체로는 1904년에 창설된 ‘Society of St. Thomas of Canterbury’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