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본당 [한] 麗水本堂

1930년 이동관(李, 요한)이 여수(麗水)에 첫 복음을 전한 뒤, 1934년 여수시 동산동(東山洞) 296번지에서 평화의 모후를 주보로 하여 여수본당이 출범하였다. 당시는 에이레 성 골룸바노 외방전교회가 광주교구를 설정하게 되어서 여수에도 전교의 열도가 차차 무르익을 때였다. 이러한 배경아래 설치된 여수본당의 초대(1934∼1954년) 주임신부인 이민두(李敏斗, 다두) 신부는 일제시대와 광복시기, 그리고 6.25동란을 겪는 동안 꾸준히 전교사업을 지속해 온 여수본당사의 산 증인이다. 그는 교우 수 약20명으로 시작하여, 2차 세계대전 때는, 일제에 불법 수감되어 고초를 겪다가 8.15광복으로 풀려나자 재부임하여 본격적인 전교활동을 전개하였다.

2대(1954∼1961년) 브랜든(P. Brandon, 夫) 신부는 1954년 10월 현 위치인 여수시 공화동 1117번지에 1,269평 규모의 대지를 확보하여 이사한 뒤, 1956년 7월에 사제관 및 강당부터 건립하여 임시로 성당으로 사용하면서, 마침내 1958년 10월 7일 건평 76평 규모의 여수본당을 완공하여 축성식을 가졌다. 그리고 나서 그는 1961년 7월에는 여수시 서교동(西橋洞)에 대지를 마련, 서교동본당(西橋洞本堂)을 신축하여 분리 독립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이리하여 여수본당이라는 명칭은 1961년을 구획점으로 하여 여수시에 생긴 자본당(子本堂)의 설립을 계기로, 모본당(母本堂)의 칭호는 사라지고, 그를 승계한 후신(後身)으로서 광주교구 관하의 동산동본당(東山洞本堂) 이름으로 불려지게 되어 오늘에 이른다.

이리하여 동산동본당의 역대 주임신부 명단을 보면, 3대(1961∼1962년) 던(J. Dunne, 都) 신부, 4대(1962∼1965년) 로한(P. Lohan, 韓) 신부, 5대(1965∼1966년) 김정용(金正容, 안토니오) 신부, 6대(1966∼1967) 페냐(Aloisios Pena) 신부, 7대(1967∼1968년) 샤베즈(J. Chavez, 姜) 신부, 8대(1968∼1970년) 콘트레라스(F. Contreras) 신부로 이어졌는데, 콘트레라스 신부의 본국 귀국으로 한때 본당신부 대리에 바레라(C. Barrera) 신부가 부임한 적도 있다. 이어 9대(1971∼1973년) 김정용 신부, 10대(1073∼1976년) 김충호(金忠浩, 미카엘) 신부, 11대(1976∼1981년) 김용배(金容培, 안드레아) 신부, 12대(1981∼현재) 장용복(張容福, 미카엘) 신부로 승계되면서 전교사업은 거듭 발전해 가고 있다. 1983년 말 집계로 신자총수가 1,873명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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