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6월 27일 당시 평양교구장 모리스(J.E. Morris, 睦) 몬시뇰에 의해 평양 상수구리(上水口里)에 창설된 방인(邦人)수녀회. 수녀양성을 위촉받은 영유읍(永柔邑)에 있던 메리놀(Maryknoll)회 수녀들은 1931년 상수구리에 기와집 2채를 매입하고 1932년 3월에는 교황청으로부터 설립인가와 회칙인준을 받았다. 1940년에는 평양 관후리(館後里), 대신리(大新里), 서포(西浦), 평안북도 비현(枇峴), 신의주(新義州), 마전동(麻田洞)본당에서 활동할 수 있는 만큼 성장하였다. 1941년 12월 2차 세계대전으로 사태가 악화됨에 따라 장정온(張貞溫) 수녀가 초대 원장수녀로 임명되어 메리놀수녀회와 완전히 분리 독립되었다. 1945년 광복은 되었으나 1950년 5월 14일 공산당원들로부터 수녀원 건물이 점령당하자 수녀들은 귀가하게 되었고 이로써 평양에서의 수녀원생활은 끝이 났다. 1950년 12월 부산(釜山) 메리놀수녀들과 함께 메리놀병원, 군부대 세탁일을 하면서도 피난민과 고아들을 돌보았는데 이것이 현재 성모보육원이다. 1955년 4월 본원을 서울 흑석동(黑石洞)으로 이전하고 그 옆에 성 마리아 의원을 개원하였다. 1959년 10월에는 당시 춘천교구장 퀸란(Thomas Quinlan, 具仁蘭) 주교의 주선으로 수련소를 춘천으로 이전하였다가 1966년 11월 현재 서울 정릉에 신축된 본원 건물로 1969년 2월 이전하였다. 1964년부터는 서독으로 회원을 파견함과 아울러 1971년 8월에는 부인들로 구성된 성모자매회를 발족하였다. 1980년에는 경기도 용인군에 소화의원(小花醫院)을 개설하여 영세민을 위한 진료를 시작하였다. 1980년에는 서울교구장으로부터 새로운 회헌 인준을 받았다. 현재 정릉에 있는 본원고 수련원을 비롯하여 국내외 60여 개의 분원에서 선교와 특수사목에 봉사하고 총원장 이영자(李英子, 글로리아) 수녀를 중심으로 286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1972년 7월에 시작된 가톨릭 성서모임도 대단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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