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작통법 [한] 五家作統法

조선시대에 주민 사찰을 위해 제정된 주민조직법의 하나로 5가(家)를 1통(統)으로 하여 통주(統主)를 두고, 5통을 1리(里)로 주민을 조직한 법이다. 만약 부역이나 납세, 징용 등의 의무를 소홀히 할 경우는 통 · 리 단위로 연대책임을 물었다. 이 법은 흉년에 기근을 방지하기 위해 동리에서 음식물을 공동관리 하던 공동체적인 상호부조의 전통에 기원을 둔 듯하나 1458년 한명회(韓明澮)는 저수관개(貯水灌漑)를 원활히 감독, 관리하기 위해 이러한 조직을 채택하였고, 그 뒤 연산군은 1503년 변방지방의 세금징수와 탈주자 방지를 위해 이 조직을 원용하였다. 이것이 국법으로 제정된 것은 1675년(숙종 1년) 때의 일이다. 윤휴(尹-)의 건의를 받아들인 조정은 전국적으로 오가작통법을 적용시키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그 뒤에도 국경지방에 강제 이주된 마을의 주민들만을 상대로 실시되었던 것으로, 이것이 천주교인의 박해를 위해 적용된 것은 1801년(순조 원년) 이후의 일이다. 순조는 1월 10일(음) 전국에 교서를 내려 사학(邪學) 엄금을 명하면서, 오가작통법을 적용하며 만약 통내에 천주교인이 있으면 통주들까지 처벌하여 천주교를 뿌리째 뽑아 씨를 남기지 말라고 하였다. 이로써 신유박해 이후 많은 교우들이 오가작통법의 피해를 받아 잡혀가 순교하였으며, 이 오가작통법은 천주교의 전교를 막는 데 주된 역할을 하였다.

[참고문헌] 유홍렬, 한국천주교회사, 가톨릭출판사, 1962 / 최석우, 한국천주교회의 역사, 한국교회사연구소,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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