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용진(1906∼1983). 교육자 · 수학자 · 이학(理學)박사. 세례명 요한, 호는 석봉(石峰). 경북 출신. 교우 가정에서 태어나 1926년 대구고보(大邱高普)[경북고등학교의 전신]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 1932년 히로시마(廣島)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귀국하여 대구고보 교사로 재직하면서 1935년 이효상 · 김주석 · 서정섭 · 김용화 등 젊은 평신도들과 ‘육우회’(六友會)를 조직, 전교와 문맹퇴치에 힘쓰는 한편, <천주교회보> 간행의 주역으로 활동하는 등 대구교구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고 그 뒤 경북중학교장을 거쳐 1948년 대구사범학교[경북대학교의 전신] 교수로 부임, 1971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경북대 대학원장, 대한수학회 부회장을 역임하며 많은 인재를 배출했으며, 1975년에서 1979년까지는 대구 대교구 사제양성후원회 회장직을 맡아 교구내의 사제 양성에 공헌하였다. 이러한 교육과 교회 사업에 대한 공헌으로 1970년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받았고 1974년에는 교황청으로부터 평신도사도직 수훈포상을 수여받았다. 1983년 1월 15일 대구 대명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사망, 경북 고령군 선산에 안장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