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아킴 [라] Joachim

성인. 축일 7월 26일. 성모 마리아의 부친, 성녀 안나의 남편. 이름은 야고보 원복음서(原福音書) 및 라틴어 계류(系類)에까지 소급되지만, 라틴교회에서는 약간의 예외말고는 중세 후기에 이르기까지 승인되지 않았다. 도미니코회 회원 보베의 빈첸시오(Vincentius Bellovacensis)의 ≪Speculum historiale≫ 및 ≪황금 성인전≫이 전래의 외전적(外典的) 자료를 급속히 전파하고 있는 마리아 전설을 중개했었다. 그리스교회는 7∼8세기 이래로 요아킴이란 이름에 관한 전설이 끊임없이 전해져 왔다. 그 이전에는 살라미스(Salamis)의 에피파니오스(Epiphanios, 315?~403)가 두 번 이 이름을 인용한 바 있다. 성모 마리아의 부친의 이름으로는 이밖에 클레오파스(Cleophas) 또는 클로파스(Clopas), 사도크(Sadoch), 헬리(Heli) 등이 있다. 이 가운데서도 헬리란 호칭이 많이 주장되어 왔다. 외전(外典)에 의하면 요아킴은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의 사제들에 의해 희생집전에서 제외되어, 황야의 목자들에게 가서, 거기서 하늘의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부부가 된지 20년만에 딸을 얻었다. 십자군 시대 이래의 한 전설에 의하면 요아킴은 갈릴래아의 세포리스(Sephoris) 태생이다. 5세기의 성모 마리아 태생 복음서에도 갈릴래아설을 주장하고, 마리아는 나자렛에서 태어나 자라났다고 하였다. 야고보 원복음서(2세기) 및 매우 오래된 몇몇 순례기록에 의하면 요아킴은 안나와 함께 만년에는 예루살렘에 살고 있었다. 그곳의 오래된 성 마리아 성당과 그 지하성당은 성모 마리아가 태어나 살던 장소로 되어 있었으나, 후일에 와서 비로소 성 요아킴 및 성 안나의 성당(묘지가 있음)으로 되었다. 요아킴전(傳)으로부터 나온 예술적 표현(대개 안나와 함께 묘사된)은 마리아전의 실마리로서, 동방에서나 서유럽에서나 5세기 중에 드물게, 이어서 이탈리아에서는 지오토(Giotto di Bondone, 1266?∼1337) 이래로, 프랑스에서는 13세기 내지 15세기에, 독일에서는 15세기 및 16세기의 자료에서 볼 수 있다. 그리스도교 예술에서는 노인 요아킴이 두 마리의 비둘기가 들어있는 새장을 손에 들거나(루가 2:24), 또는 어린 마리아를 안은 모습으로 표현된다. 축일은 그리스교회에서는 9월 9일(이미 7세기의 성인 달력에서), 서유럽에서는 15∼16세기 이래로 9월 16일 아니면 17일, 또는 12월 9일 아니면 10일, 로마 성무일과에서는 율리오 2세 이래로 3월 20일 내지 22일이다. 그러나 1572년경에 요아킴의 이름이 교회축일표에서 삭제되었고, 1584년 성무일과에 다시 허가되었다. 축일은 바오로 5세와 그레고리오 13세에 의해 성인축일표에 채용되는 동시에 8월 15일 이후의 주일로, 1913년에는 8월 16일로 변경되었다. 콥트교회에서는 4월 2일, 시리아 교회에서는 7월 25일(사망일), 베네딕토 교회에서는 7월 26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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