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바노 [라] Urbanus

Urbanus 2세(1042?∼1099). 교황(재위 : 1088∼1099). 복자. 원명 Odo 또는 Udo. 프랑스의 샤티용 쉬르 마른(Chatillon-sur-Marne) 태생. 처음에 클뤼니 수도원에서 수업하고, 선배인 힐데브란트(후의 성 그레고리오 7세)에 의해 추기경으로 천거되고, 이어서 클뤼니파 추기경들에 의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정치적 수완이 뛰어나 힐데브란트의 숙적인 독일황제 하인리히 4세와의 투쟁에서는 독일인 성직자 그룹을 만들어 반(反)황제열을 일게 하였다. 그리하여 하인리히가 성 그레고리오 7세에 대항해서 옹립한 대립교황 글레멘스 3세를 로마에서 추방(1093년), 이때부터 그의 세력은 급격히 증대하였다. 회교도인 터키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그리스도 교도의 성지순례를 불가능케 하고, 콘스탄티노플까지 육박하자 동로마황제 알렉시우스 1세가 로마 교황에게 구원을 요청, 우르바노 2세는 피아첸사에서 교회회의를 개최하고(1095년), 성지 수복을 위한 성전(聖戰)을 일으켜야 함을 강조하고, 동방으로부터의 사절에게도 원조를 약속하였다. 한편 아미앙의 수도사 피에르(Pierre)를 시켜 각지를 유세케 하고, 동년 11월의 클레르몽 회의에서는 교황이 직접 수천 명 대중을 향해 종군을 간청하는 대연설을 통해 출정자에게는 전대사와 그 밖의 보상을 줄 것을 약속하였다. 마침내 제1회 십자군이 결성되고(1096년) 피에르가 거느리는 프랑스군은 육로로 예루살렘을 향해 떠났다. 복자 우르바노 2세는 자신의 대리자로서 주교 아데마르(Adhemar)를 원정군에 종군케 하였다.

Urbanus 8세(1568∼1644). 교황(재위 : 1623∼1644). 원명 Maffe Barberini. 피렌체 태생. 젊어서 문필가로 이름을 떨쳤다. 추기경(1606년), 볼로냐의 교황사절(1617년), 이어서 교황에 선출되었다. 교황 취임 후 교회의 개혁을 추진하고, 많은 성자(聖子)를 서임했으며, 탁발(托鉢)수도회와 라자리스트회(Lazaristae)를 인가하는 등 종교생활 부흥에 힘썼다. 또한 우르바노 선교대학을 설립하여(1627년) 전도정신을 진작케 하였다, 이단 추방에도 열심이어서 천문학자 갈릴레이를 재판하고(1633년), 얀센(C.O. Jansen)을 이단으로 선고하는 동시에 그의 저서 ≪아우구스티누스≫를 금서(禁書)로 정하였다(1642년). 30년 전쟁 때는 합스부르크가(家)에 반대하는 리실뢰(A.J. Richelieu)의 정책을 기용해서 가톨릭 연맹의 대(對) 프로테스탄트 세력을 감퇴시켰기 때문에 민중의 동정을 상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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