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자연현상이나 사람의 일은 선천적으로 정해져 있어서, 결코 사람의 힘으로는 변경 못 시킨다는 체념관(諦念觀)을 말하며, 다른 말로 숙명론(宿命論)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운명론을 믿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도 없는 절대적인 운명의 힘이며, 의지의 자유라든지 섭리(攝理, providence)까지도 부정한다. 운명론이 나타난 것은, 그리스 및 게르만의 이교상에서 그 교세의 몰락현상으로서였는데. 아라비아에선 ‘키스메트’(kismet)라고 불려 이슬람교의 근본 교리의 하나로 형성되었다. 철학적으로 볼 때는, 운명론은 스토아파를 일단 거친 뒤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의 ‘영원회귀’(永遠回歸, ewige Wiedderkunft)에 의하여 그 기초가 다져졌다.
고대 그리스 사람은, 인간이나 신들이나 다같이 ‘운명’을 뜻하는 헤이마르메네(Eimarmene), 아이사(aisa), 모이라(moira)라는 것들의 최고의 강제력 아래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보다 좀 더 경박한 생각에서, 그 힘을 튜케(tuke)라 이름 붙여 눈가리개를 하고서 재화(財貨)를 나누어 주는 여신(女神)으로 해석하였다, 이 모이라와 튜케에 대응되는 로마 사람들의 말은 ‘fatum’[신생아에 대한 신탁(神託)]과 ‘fortuna’[행복의 여신]이다. 북 유럽의 여러 민족도 그들의 어휘 속에, 그들의 조상이 남긴 운명론에 관한 기억을 보존하고 있는 낱말들이 있다. 즉 고대 게르만 민족의 말에는 ‘우를라크’(Urlag) 즉 근원적인 결정, ‘메토드’(Metod) 및 ‘우르드르’(Urdr) 즉 규정하여 재판하는 힘 등 숙명에 관련된 것들이 있다.
사건의 인과적인 관련이 명료하지 않는 한, 미지의 친화적(親和的)인 힘 혹은 적대적인 힘에 대한 신앙이 활발해진다. 이러한 힘은 대개 운명의 여신, 모신(母神), 마녀(魔女), 별의 신 따위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이성이 강화됨에 따라서 운명론은 후퇴하였지만, 인간의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 명백히 되었을 때는, 다시 숙명 또는 운명을 믿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리하여 숙명 또는 운명이 차차 변질하여 웅대하면서 굉장한 초인격적인 세계 법칙으로 화할 수도 있다. 원시적인 종교에서는, 운명의 이념이 수많은 조짐 또는 형태로 변화하였다 그러나 숙명이나 운명의 신앙은, 신이 이성 있는 성스러운 인격으로서 인정되고, 신이 절대로 반항할 수 없는 지배력을 소유할 때만이 실제로 극복 가능한 것이다.
이상을 요약하면, 운명론은 고대에 있어서 지배적이었다. 사람의 화복(禍福), 수명, 생사 문제가 모두 한 명의 악신(惡神)의 손아귀에 좌우된다고 생각하였던 바빌론의 종교는 물론이요, 인간 세계에는 자연의 회귀현상에서 완전히 나타난다는 이법(理法)이 불규칙하고 불완전한 모양으로 밖에는 나타나지 못하기 때문에, 세계는 쇠퇴, 파멸로 기울어지게 마련이라고 본 그리스 사람의 역사관도, 일종의 운명론이었다. 중국의 노장사상(老莊思想)에서의 영원한 우주적인 이치 즉 ‘도’(道)에 의한 친자의 임명 또는 혁명의 천명(天命)사상이나, 불교의 ‘카르마’(Karma, 業)에 의한 인과응보의 세계나. 혹은 인도의 ‘바라문’(婆羅門, Brahmana)의 실아체험(實我體驗), 바라문의 입김에 따라 세계가 탄생하며 삼켜지는 커다란 우주시간 물결 사이에 네 개의 시대가 경과하는 데, 이 경우 최후의 것은 악화(惡化)의 힘으로서의 ‘시간’, ‘때’(Kala)에 의하여 파멸, 즉 세계 연소로 정해지며, 개선이나 구제의 방도가 없다고 하는 사상도 운명론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이슬람교의 ‘알라’(Allah)신앙도 일종의 결정론(determinism)이나, ‘코란’에서의 제일의적인 의미 부여가 신 중심적이라는 점에서는 결코 운명론적은 아니다. 또한 칼빈주의(Calvinism)의 예정설(豫定說, predestination)도 종교적인 결정설로 보이나, 그것은 자유로운 은혜의 선행규정 아래에서의 복종을 결단하도록 촉구하며, 자유로운 자발적인 책임응답을 일깨우도록 하므로, 일반적인 운명론을 뛰어 넘고 있다.
근대적인 형태로서는 1차 세계대전 뒤에 나온 슈펭글러(Oswald Spengler, 1880~1936)의 ≪서양의 몰락≫(Der Untergang des Abendlandes, Umrisse einer Morpologie der Weltgeschichte, 1918~1922)에 있어서의 문명의 유기체적인 숙명론이나,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 1818~1897)의 문명수기, 그 병리학적인 진단도, 운명론의 범주에 든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운명론의 문제는 의지의 자유, 응답적인 결단을 눌러 죽였느냐 아니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그리스도교는 하느님으로부터 독립한 운명이나 숙명 따위를 인정하지 않고, 전지전능하게 자비적으로 세계를 주재하며, 인간의 자유행동이라는 것을 자신의 영원한 결의 가운데 끌어들인 가장 높은 자리의 오직 한 분 하느님의 섭리에 대하여 가르친다. 성서 속에는 운명 외 신앙에 언급하는 구절이 매우 드물다.
운명이란, 결국 인간의 삶과 그 환경세계가 자연 필연이든가 아니면 역사 필연에 의하여 결정되어 있다고 믿는 사상이다.
[참고문헌] H. von Arnim, Die stoische Lehre von Fatum und Willensfreiheit, Vienna 1905 / E. Dennert, Naturgesetz, Zufalll, Vorsehung, 1906 / A. Festugiere, L’Ideal religieux des Grecs et l’Evangile, Paris 1932 / W.C. Greene, Maira: Fate, Good and Evil in Greek Thought, Cambridge, Mass. 1944 / D. Amand de Mendieta, Fatalisme et liberte dans l’antiquite grecque, Louvain 1945 / J. Konard, Schicksal und Gott. Untersuchungen zur Philosophie und Theologie der Schicksalserfahrung, 1947 / E. Stakemeier, Uber Schicksal und Vorsehung, Luzern 1949 / カトリツク大辭典 III, 東京 富山房, 5刷, 1954 / G. Peligersdorffer, Fatum und Fortuna, Literaturwissenschaftliches Jahrbuch, NF 2, 196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