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를 중심으로 강원도의 일부를 관할하는 교구. 로마 교황 바오로 6세는 한국 교회가 날로 크게 발전하고 있음을 알고, 1965년 3월 22일에 춘천교구(春川敎區)의 일부지방을 떼어, 원주교구를 설정함과 아울러, 지학순(池學淳) 신부를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하고, 그 해 6월 29일에 주교 성성식(成聖式)을 갖게 하였다.
원주교구의 관할지역은 원래 강원도(江原道)와 충청북도(忠淸北道)의 북쪽 산악지대에 펼쳐 있으므로, 조선 교회 창설 이래 거듭된 박해에서 살아남은 천주교인들이 화를 면화고자 피신하여 화전(火田)을 일구어 삶을 이어가면서 신앙을 지켜 내려온 고장이 많았다. 1801년, 초기 한국 교회의 주요인물인 황사영(黃嗣永)이 박해를 피해, 제천 배론[舟論]이라는 산골짜기 토굴에 숨어, 이른바 백서(帛書)를 작성하고 체포되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당이 1856년 제4대 조선교구장인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에 의해 세워진 곳도 바로 이 곳이었다.
이렇듯 유서 깊은 고장인 이곳에도 1886년 한불조약(韓佛條約)의 체결 이후 신교의 자유가 찾아오자, 이제까지 숨어서 신앙생활을 계속해 오던 신자들이 이제는 공공연하게 이웃에도 복음을 전하니, 1887년에 입국한 르메르(Le Merre, 李類斯) 신부가 1890년 횡성군의 풍수원(豊水院)에다 성당 터전을 마련했을 때에는, 이웃 가까운 마을에서 모여든 신자만도 2,000명이 넘었다고 한다.
1982년 말 현재 원주교구의 관할지역은 강원도의 원주(原州), 동해(東海), 태백(太白)의 3개 시(市)와, 원성(原城), 영월(寧越), 정선(旌善), 삼척(三陟), 횡성(橫城)의 5개 군(郡)과 충청북도의 제천시(堤川市), 제원군(堤原郡), 단양군(丹陽郡)을 포함하고 있는데 1983년말 교세는 다음과 같다.
신자수 4만 135명, 본당수 27개소, 공소 85개소, 한국인 신부 35명, 한국인 수녀 51명, 외국인 수녀 1명, 여자수도단체 9, 유치원 20개소, 중학교 1개교, 고등학교 1개교, 주일학교 45개소 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