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도포본당 [한] 六道泡本堂

1923년 만주 간도성 훈춘현 육도포촌(間島省 琿春縣 六道泡村)에 창설되어 1932년 폐쇄된 연길교구 소속본당. 주보는 성 안드레아. 훈춘지역은 1905년경 복음이 전파되어 1907년 이 지역의 주민 13명이 원산본당의 브레(Bret, 白) 신부에게서 영세한 후 교우촌을 건설, 김명제(金命濟, 베드로) 신부와 라리보(Larribeau, 元亨根) 신부의 순방을 받았고, 1909년 다시 100여명의 영세자들이 나와 7개의 공소가 개설되었다. 그 후 1920년 함경도와 간도지방이 오틸리엔 베네딕토회의 포교지로 되어 1923년 퀴겔겐(C. Kugelgen, 具) 신부와 로트(L. 깨소, 洪) 신부가 파견됨으로써 본당으로 창설되었다. 1924년 훈춘본당을 분리, 독립시킴과 동시에 퀴켈겐 신부가 훈춘본당 주임으로 전임되자 보좌이던 로트 신부가 주임신부가 되었고, 이어 1926년 되르플러(E. Dorfler, 鄭) 신부가 3대 주임으로 부임, 1929년까지 사목하였다. 1929년 트라버(Traber, 馬) 신부가 4대 주임으로 부임, 성당을 증축하고 해성학교를 개설했으나 마적과 공산군의 빈번한 침략으로 1932년 트라버 신부가 본당을 함경북도 경흥(慶興)으로 옮기게 되자 이 지역은 훈춘본당 관할 지역으로 되었다. 신부가 떠난 성당과 사제관은 1934년 공산군의 침략으로 전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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