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공희(1924∼). 대주교, 초대 수원(水原) 교구장. 제7대 광주(光州) 대교구장. 세례명 빅토리노. 평남 진남포시 용정리(龍井里)에서 출생. 1942년 함남 덕원(德源) 신학교에 입학, 중등과, 고등과, 철학과를 차례로 졸업하고 신학과에서 수학하던 중 1949년 4월 북한 공산정권에 의해 덕원 신학교가 폐쇄되자 지학순 주교(당시 신학생)와 함께 월남하여 성신대학(聖神大學)[현 가톨릭大學]에 편입, 1950년 동(同)대학을 졸업하고 3월 20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서품 후 명동본당 보좌신부로 재직하다가 이듬해 군종신부로 입대, 부산 포로수용소에서 사목하였고, 1952년 부산 가톨릭도서관 부관장, 1954년 성신중 ·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1956년 로마 성 우르바노 대학에 유학, 이듬해 신학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성 그레고리오 대학원에 진학하여 1960년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이해 5월 로마에서 귀국한 뒤 한국 천주교중앙협의회 총무로 재직하면서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주교 수행원으로 참석하였다.
1963년 수원교구의 창설과 함께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되어 이해 10월 20일 주교로 성성(成聖)되었고, 그 뒤 1967년 노기남 대주교가 서울 대교구장직을 사임하자 1년간 서울 대교구장 서리직을 겸임하였으며 1973년 11월 7일 대주교로 승임됨과 동시에 광주 대교구장으로 전임되었다. 1975년 한국 주교회의 의장을 지내고 여러 차례에 걸쳐 아시아주교회의에 한국교회 대표로 참석하였고 현재는 광주 대교구장으로 광주 대교구의 사목과 행정을 총괄하는 이외에 주교회의 부의장과 주교회의 사회주교위원회, 200주년 주교위원회 등의 위원장 및 성직주교위원회 위원, 그리고 정의평화위원회 담당주교로 활동하고 있다.
[참고 : 2000년 11월 30일 광주대교구 제7대 교구장인 윤공희 대주교에 이어 최창무 안드레아 대주교가 제8대 교구장으로 착좌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