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오 [라] Julius

Julius, 2세(1443~1513). 르네상스기의 교황(재위 : 1503~1513). 원명 Giuliano della Rovere. 이탈리아 사보나 부근에서 태어나 숙부인 교황 식스토 4세의 후광을 업고 많은 주교령을 받았으며, 추기경으로 서임되었다(1471년). 교황 인노첸시오 8세(재위 : 1484~1492) 즉위와 그 정책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나, 다음의 알렉산데르 6세와 사이가 나빠서 그의 재위기간 중에는 프랑스로 물러가 있었다. 6세의 사후 로마로 돌아와서 교황이 되었다. 타고난 정치가여서 이미 알렉산데르 6세 시대에 프랑스왕 샤를 8세의 나폴리 공략을 유발하고 캄브레이동맹(1508년)으로 프랑스와 결탁하여 스페인에, 독일과 결탁하여 베네치아에 대항하였다. 프랑스의 세력이 이탈리아에 강화되자 영국, 스페인, 베네치아, 스위스를 포함하는 신성동맹을 체결(1511년), 스페인, 베네치아의 힘을 교황청을 위해 이용하였다. 이렇듯 정치 목적을 위해서는 어제까지의 적과 동맹을 맺는 것도 서슴지 않았으나 스페인 세력의 대두를 누를 수는 없었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사심(私心)을 위해서가 아니고, 오히려 교황권을 정치영역에서 강화 · 확립하려는 의도에서 온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 교황청은 더욱 종교적 권능을 잃고 세속화 하였다. 프랑스 왕 루이 12세는 율리오 2세에 대항할 피사회의를 제창했으나(1511년) 성공하지 못했고, 이듬해 율리오 2세가 제5차 라테란 공의회를 소집하여 대항하였다. 이 회의는 1517년까지 계속되는데 프랑스의 교회는 율리오 2세의 말년까지도 이 회의에서 분리되어 있었다. 그는 또한 르네상스 미술을 애호하여 브라망테(Bramante, 성 베드로 대성당의 설계), 라파엘로(S. Raffaello, 율리오 2세의 초상화 등), 미켈란젤로(B. Michelangelo, 성 베드로 대성당에 모세상을 조각) 등의 예술가를 보호하였다. 성 베드로 건축을 위한 성년대사(聖年大赦)를 포고(1506년), 전대사부(全大赦符)를 발행, 이것이 후에 레오 10세에 의해 갱신됨으로써 루터(M. Luther)의 95개조 제제(提題)의 직접적 동기의 하나가 되었다.

Julius, 3세(1487~1555). 종교개혁기의 교황(재위 : 1550~1555). 원명 Giovanni Ciocci del Monte. 로마 태생. 법률을 공부하고 율리오 2세를 섬겼다. 추기경(1536년), 트리엔트 공의회의 교황사절의장(1545년)을 거쳐 교황이 되었다. 르네상스기 교황들의 화려 · 유타(遊惰) · 족벌주의를 계승하고 있지만, 교회개혁에도 열의를 보여 예수회를 육성하였다. 또한 예술을 애호하여 미켈란젤로의 보호자이기도 했다. 영국 에드워드 6세가 죽은(1553년) 뒤 추기경 폴(R. Pole)을 영국에 파견한 일 때문에 영국은 여왕 메어리 1세 때 일시적이나마 가톨릭으로 복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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