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양 [한] 李基讓

이기양(1744∼1802). 문인. 자는 사흥(士興), 호는 복암(伏菴), 본관은 광주(廣州), 덕형(德馨)의 7대손. 1744년 진사시(進士試)에 급제, 영릉참봉(英陵參奉)이 되었고 1784년 이벽(李檗)과 천주교에 대한 토론을 벌였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1795년 정시문과 을과(庭試文科乙科)에 급제, 부수찬(副修撰)이 되고 이어 검상(檢詳), 승지(承旨), 의주부윤(義州府尹) 등을 역임한 후 1800년 진하부사(進賀副使)로 청(淸)에 갔다가 다시 천주교 교리를 접하게 되었다. 귀국 후 이가환(李家煥) 등 신서파(信西派)와 교유하며 서학(西學)을 강론하고 실학(實學)을 토대로 한 사회개혁을 주장하였다. 병조참판(兵曹參判), 우승지(右承旨),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을 거쳐 1801년 대사간(大司諫), 예조참판(禮曹參判), 좌승지(左承旨)를 역임하고 이해 신유박해(辛酉迫害)가 일어나자 천주교인으로 고발되어 함경도 단천(端川)으로 유배되어 이듬해 그 곳에서 사망하였다. 사후(死後) 신원(伸寃), 복관(復官)되었다. 저서로 ≪복암유고≫(伏菴遺稿)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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