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로욜라의~(I. de Loyola, 1491/1495~1556). 성인. 축일은 7월 31일. 예수회의 창립자. 스페인의 로욜라 가문 출신. 일찍 입대(入隊), 팜펠루나(Pampeluna) 함락(1521년) 때 부상당하여 병상에서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생애에 관한 서적을 읽고 그리스도의 군사가 될 것을 결심하였다. 회복 후 몬세라트(Montserrat)에서 참회, 만레사(Manresa)에서 기도와 금욕 생활을 하였다. 대부분 거기서 쓰여진 ≪영성수련≫(靈性修鍊, Exercitia Spiritualia)은 신비체험을 통해 얻은 그의 영성적 통찰력을 반영하고 있다. 로마와 예루살렘을 탁발(托鉢) 여행, 스페인으로 돌아가기 전 학문의 필요성을 절감, 바르셀로나(Barcelona)의 어린 학생들에게서 문법부터 배우기 시작, 마침내 파리 대학에서 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1524∼1534년).
파리 시절, 사비에르(St. Francis Xavier)와 파베르(Petrus Faber) 등 뒷날 첫 예수회원이 된 6인을 알게 되었고 모두 1537년 사제로 서품되었다. 이들은 교황에 절대 충성을 바치는 수도단체의 설립을 청원, 1540년 교황 바오로(Paulus) 3세의 대칙서 에 의해 예수회는 공인되었다. 그 뒤 급성장하는 예수회와 그 회칙 제정(1547∼1550)에 전념, 회칙은 일생을 통해 개편되었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예수회를 통해 교회를 안으로부터 개혁시킨 데 있으며, 예수회는 교육사업과 성사의 중요성에 대한 재인식, 그리고 새로 발견된 이교지역의 복음화를 통해 종교개혁으로 타격받은 로마 가톨릭 교회를 회복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② 안티오키아의~(I. Antiochenus, 35?∼110?). 성인. 안티오키아(Antiochia)의 주교, 초기 교회의 신학자. 시리아 출생으로 110년경 로마에서 순교하였다. 축일은 로마전례력에서는 10월 17일. 희랍 정교회에서는 12월 20일. 그의 전반생은 알려져 있지 않은 데 안티오키아에서 개종한 뒤 그리스도 교인이란 명목으로 체포되어 사형언도를 받고 로마로 호송되었다. 호송 도중 스미르나(Smyrna)에서 폴리카르포(Polycarpus)의 환영을 받았고 인근 교회에서도 문안자를 보내왔다. 이에 대한 답례로, 그는 스미르나에서 에페소, 마녜시아(Magnesia), 트랄레스(Tralles) 교회 및 로마 교회로, 트로아스(Troas)에서 필라델피아와 스미르나 교회, 폴리카르포에서 서간을 써 보냈다. 그의 서간은 7개의 진본(眞本)이 전해진다.
서간에서 가현설(假現說, Docetism)을 반박하여 그리스도의 참된 인성(人性)을 강조했고, 주교직에서 교회의 일치를 구체화하였으며 그의 지역에서 군주제적(君主制的) 주교직을 관철시켰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가 아버지에게 했듯이 주교를 따르라고 했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곳에 가톨릭 교회가 있는 것처럼 주교가 있는 곳에 교회가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가톨릭’이란 용어가 처음 사용되었다. 그는 사도 전통을 계승하는 데는 실패했으나 사도 교부들 중 바울로의 사상과 요한의 사상을 결합하여 조화있게 발전시킨 독특한 실천신학자로 평가된다.
